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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 [속담으로 보는 불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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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10-05 15:39 조회5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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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 지금은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겠지만, ‘되’나 ‘말’은 쌀이나 콩, 팥 같은 곡식의 분량을 잴 때 쓰는 용기用器였다. 또는 그런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이기도 했다. 한 되는 약 1.8리터로 페트생수병 하나 정도의 부피다. 열 되가 한 말이기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나중에 그가 나에게 그 열 배를 되돌려준다는 뜻이다.


 불교교리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인과응보의 가르침일 것이다. 누구나 업을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는다. 선업을 지으면 즐거운 과보를 받고善因樂果, 악업을 지으면 괴로운 과보를 받는다惡因苦果. 제3의 어떤 절대자가 나의 행위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에 상응하는 고苦 또는 낙樂의 과보를 주는 게 아니라, 업이든 과보든 모두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기에 자업자득 이라고 한다.


 그런데 보시행의 경우 이런 인과응보는 ‘되로 주고 말로 받는’식으로 일어난다. 즉, 작은 보시의 선업을 지었는데, 큰 과보를 받는 것이다. 『대지도론』에서는 보시의 공덕을 설명하면서, “축생에게 보시하면 100배가 되어 돌아오고, 악인惡人에게 보시하면 1000배가 되어 돌아오며, 선인善人에게 보시하면 10만 배가 되어 돌아오고, 욕심을 떠난 사람離欲人에게 보시하면 10억 만 배가 되어 돌아오며, 수다원과 같은 성인들께 보시하면 무량한 복이 돌아온다.”고 가르친다.


 이 경문의 교훈은 두 가지다. 첫째는, 보시의 선업을 지었을 때 그에 대한 과보가 1:1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100 이상으로 일어난다는 점이고, 둘째는 ‘보다 선善하고 수행의 경지가 높은 분’에게 보시할수록 그 과보가 크다는 점이다. 심지어 짐승이라고 해도, 내가 밥을 한 끼 먹여주면 그런 보시의 공덕으로 인해 내가 100끼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과보를 받는다.


 또, 불교 수행의 길에서 수다원의 지위에 오른 성인聖人에게 보시할 경우 무량한 복이 돌아온다. 그 대상이 짐승이든 인간이든, 인간의 경우 악인이든 성인이든 우리가 누군가에게 보시할 경우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정도가 아니라 최소한 100배 이상, 많게는 무량한 복덕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것 같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짐승이든 인간이든 다른 생명체에게 크게 보시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세끼 밥을 넉넉히 먹고 살아가는 것은 아마 되로 주듯이 몇 번 보시했던 일에 대해 말로 받고 있는 과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은 보시로 큰 과보를 받았던 일화는 아쇼카왕의 전기인 <아육왕전>에도 실려 있다. 불교에 귀의한 후 무력이 아니라 다르마에 의한 통치를 선언했던 아쇼카왕은 전생에 덕승德勝이라는 이름의 어린아이였는데 동생과 흙으로 성城을 만들면서 놀다가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시던 석가모니부처님을 뵈었다. 덕승동자는 흙으로 만든 성 안의 창고 자리에서 흙 한 줌을 움켜쥐고서 ‘보리’라고 부르며 부처님께 시주를 올렸고, 부처님께서는 이를 기꺼이 받아주셨다. 덕승동자는 이 보시의 공덕으로 인해 그 다음 생에 인도대륙 거의 전역을 통일한 아쇼카왕이 되었다고 한다. 되로 주고 말 이상으로 받는 엄청난 과보다. 그를 받아주신 분이 성인 중의 성인이신 부처님이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