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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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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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10-05 15:17 조회5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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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은 수영을 못한다. 물속에서 걷는 게 고작이면서도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탓에 뒤뚱거리다가 물을 먹고 허우적거리기 일쑤다. 처음 수영을 배우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처럼 늘 등에다가 백 플로이트를 매달고도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가 보기 안타까울 정도다. 하지만 여인은 늘 웃는다. 꽃무늬 요란한 수영복을 입으면서도, 신기한 듯 자랑스러운 듯 몇번이고 수경을 썼다 벗으면서도, 몸매 무관 보무도 당당하게 수영장에 들어서면서도, 제법 선뜻해진 물에 소스라치면서도, 25m 레인을 250m처럼 걷고 나서 숨을 헐떡이면서도, 물개처럼 날랜 이가 일으키는 거센 물살에 눈물 콧물을 빼면서도, 청하지 않은 사람의 등까지 벅벅 문질러 주면서도, 투박한 손으로 소꿉놀이라도 하듯 기초화장품을 찍어 바르면서도 여인은 웃으면서 말한다. 난생처음 수영장이라는 데를 와서 수영복을 입어보고 수경을 쓰고 수영이라는 걸 해 봤으니 이렇게 좋은 날이 어디 있겠냐고. 평생 농사일만 했다는 여인의 나이는 여든두 살. 해맑은 그 웃음에 담긴 진심, 여인의 좋은 날은 매번 뭉클한 감동이다. 그래서 나는 그 여인을 할머니가 아닌 여인이라 부른다.


 주변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반 백수나 다름없는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고 있는 내게 묻는다. 무얼 먹고 사느냐, 돈벌이는 어느 정도냐, 노후엔 어떻게 할 거냐,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봐라…, 걱정 같은 잔소리가 만리장성이다. 지금도 날 선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의 유유자적이 무능력이나 게으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나는 별다른 근심 걱정이 없다. 지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일하고, 치열하지 않게, 여유를 누리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그런 일상이 행복하다고 말하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숨이 턱에 닿도록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쉬고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물질의 부족쯤이야 아끼고 줄임으로써 채울 수 있으니 오롯이 내 뜻대로 보내는 온전한 나의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고 감사할 수가 없다. 늦게라도 그런 행복을 깨닫게 된 나 자신이 대견하고 고맙다.


 미국의 한 신문사에서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는 와중에도 정말로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언제인지를 묻는 공고를 냈더란다. 쏟아져 들어온 행복 사례는 무려 5만여 가지. 돈이 많아서? 명예를 얻어서? 권력을 누려서? 아니다. 그 대부분이 ‘아침에 새소리를 듣는 행복, 예쁜 꽃을 보는 행복,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행복,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걷는 행복,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행복, 하루 일을 무사히 마친 행복’ 등 평범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것들이었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우리 주변에 널린 많은 것들이 행복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너무 엄청난 것을 바라는 욕심 때문일 수도 있겠다.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찾느라 그만 무수히 많은 세잎클로버의 행복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법정 스님의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글에 ‘자기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그러므로 행복과 불행은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고 찾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매일을 좋은 날로 맞이하는 사람에게는 매일 매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할 것이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막론하고 종파간의 소통과 화합이 아름다운 화두로 떠오른 지 오래이니 해발 650미터,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경남 하동의 깊숙한 지리산 자락에서 살고 있는 강영구 루치오 신부님의 행복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48년 의사목활동에서 은퇴한 일흔여섯 살의 강 신부님은 은퇴 사제관을 마다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지리산 골짜기, 청학동과 이웃한 원묵계元黙溪에 둥지를 틀었다. 폐가를 구입해 몇 년에 걸쳐 손수 고친 작은 오두막을 ‘산을 우러러보는 집’이란 뜻의 ‘앙산재仰山齋’라 이름하고, 웬만한 살림살이는 뚝딱뚝딱 직접 만들어서 쓴다.


 손수 일군 텃밭에서는 일용할 양식이 되어 줄 푸성귀가 자라고 작은 정원에서는 철 따라 매화, 목련, 수국, 꽃무릇이 피고 진다. 매실과 다래가 익어가는 작은 과수밭과 뒷산 세쿼이아와 녹차나무숲도 최소한의 것,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강 신부님 작품이다. 독립불구獨立不懼,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움 없이 꽃피우고 열매 맺는 나무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고요히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강 신부님은 새벽 4시 반, 홀로 미사를 드리는 일로 하루를 연다. 최소한의 것을 갖춘 오두막에서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고자 노력하면서, 오가는 이들을 정성껏 대접하고 마을을 찾아 일손을 보태며 은퇴 사제로서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고 있는 강신부님의 매일매일 역시 좋은 날이 아닐까.


 전북 익산 미륵산 해발 380m 깎아지른 절벽에 새 둥지처럼 자리 잡은 사자암에서 20년간 상좌도 공양주도 없이 손수 밥하고 빨래하면서 살아가는 70대 중반의 노승 향봉 스님이 설파하는 ‘족함도 넘침도 없는 가난한 행복, 오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누리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행복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1980년대 <사랑하며 용서하며>로 60만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향봉 스님이 지난봄에 내놓은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과 여름에 내놓은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에 담긴 행복의 의미는 꼭 불자가 아니어도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향봉 스님은 말한다. 무엇이든 나누면 기쁘고 덜어내면 가뿐하다고.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자유롭다고.


 ‘남은 미역국에 밥 말아 먹으니 세상이 배 안에 담겨 부족함 없이 행복하다. 누군가 법당의 부처님 앞에 사과 한 알을 놓고 가, 그 사과로 후식까지 즐기고 있으니 이만하면 산골 늙은이의 화려한 점심을 마친 셈이다.’

 - <산골 노승의 화려한 점심> 중에서


 ‘행복은 만족에서 비롯되고 불행은 견줌의 버릇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소유욕은 키울수록 병이 되고 욕심은 버릴수록 편안한것이다. 넘침도 없이 지나침도 없이 소소한 일상이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 <산골 노승의 푸른 목소리> 중에서


 “건강은 최상의 이익, 만족은 최상의 재산, 신뢰는 최상의 인연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안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라는『법구경』의 말씀처럼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놀랄만한 성과나 눈부신 성취가 아니어도 행복할 일이 사방 천지에 가득하다. 많은 것을 덜어내고 비워야만 보이는 것, 평범한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분명 좋은 오늘을 살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