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 | [속담으로 보는 불교]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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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9-05 16:15 조회1,98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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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 미운 짓을 하는 아이에게는 회초리를 들고서 야단을 쳐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런 아이에게 오히려 더 잘 해 주라는 교훈이다.
불전에서 번뇌를 분류하는 방식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삼독의 분류다. 삼독이란 탐욕, 분노(진에), 어리석음(우치)의 셋이다. 이 가운데 감성적 번뇌인 ‘탐욕’과 ‘분노’는 그 방향이 상반된다. 탐욕은 나를 향해 끌어당기는 감성이고, 분노는 나로부터 밀쳐내려는 감성이기 때문이다. ‘미움’은 분노의 일종이다. 내가 보기에 그 아이가 옳지 않은 행동을 해서, 나에게 그 아이에 대한 미운 마음이 가득하기에, 그 아이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이 마땅한데 이 속담에서는 그 아이에게 오히려 떡을 하나 더 주라고 한다. 내 마음과 상반된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그 아이가 내게 미운 짓을 한다는 얘기는 내가 그 아이에게 무언가 잘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또는 이유 없이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나에게 밉게 보일 수도 있다. 미운 아이에게 회초리를 들거나 야단을 치면, 미운 짓이 일단 그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강아지를 조련하듯이, 상賞과 벌罰을 적절히 섞어서 아이를 조련할 경우, 그 아이가 미운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억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아이는 벌 받는 것이 무서워서 미운 짓을 참는 것일 뿐이리라.
불교수행 초입에 수행자의 성격에 따라서 ‘거친 감성과 인지’를 정화하는 다섯 종류의 수행이 있다. ‘잘못된 마음을 중지시키는 다섯 가지 수행’이라는 의미에서 오정심五停心이라고 부른다. 탐욕이 많은 사람에게는 자기 몸이 시체가 된 후의 모습을 떠올리는 부정관不定觀, 분노가 많은 사람에게는 주변의 모든 생명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비관慈悲觀, 마음이 산란한 사람에게는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는 수식관數息觀, 무아의 이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는 오온, 십이처, 십팔계 등의 낱낱에 자아가 없음을 자각케 하는 계분별관界分別觀, 사견邪見에 빠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조건에 의존해서 발생한다는 연기관緣起觀을 닦게 한다.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은 이런 오정심 수행 가운데 자비관과 그 방식이 같다. 내가 부당하게 그 아이를 미워하든, 그 아이가 실제로 미운 짓을 하든, 나의 부당한 ‘미워함’과 그 아이의 왠지 모를 ‘미운 짓’ 모두가 잦아들게 하는 자비관의 실천이다.
의학의 분과 학문인 신경생리학 개념 가운데 ‘역치閾値’라는 것이 있다. ‘생명체가 외부 자극에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전기 자극이 신경에 가해져도 어느 정도까지는 반응이 전혀 없다가, 자극의 강도가 일정 전압에 달하면, 비로소 신경이 활성화 되어 전기가 흘러간다.
미운 아이에게 내는 자비慈悲의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다. 한두번의 실천으로 ‘나’나 ‘그 아이’의 감성과 행동에 변화가 오지 않는다. 미운 아이를 계속 자비로 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감성의 역치를 넘어서 ‘나’와 그 아이에게 변화가 온다. 끝없는 자비관의 실천이 결국 ‘미움’을 치유하는 것이다. 상벌을 통한 조련이 아니라 미움의 뿌리를 뽑는 불교적 훈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