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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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선성취 | 뻐꾸기 우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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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7-04 15:20 조회8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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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중순경부터 서원당에서 새벽불공을 하고 있으면 단음사 경내에서 뻐꾹 뻐꾹 하며 뻐꾸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둠이 밀려오는 저녁나절에 들리는 뻐꾸기 소리는 왠지 쓸쓸함과 애절함, 저녁녘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새벽녘에 우는 뻐꾸기 소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노래처럼 들린다. 그렇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귀로 들리는 것의 화려함에 속아 그 이면에 있는,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보지 못한다.


 뻐꾸기는 스스로 새집을 만들지 않고 작은 뱁새가 지어놓은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시키는 새로 예쁜 울음소리와 달리 사람들에게 다른 새를 이용하는 이기적인 새로 알려져 있다. 자기보다 작은 뱁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몰래 낳은 어미 뻐꾸기의 탁란 보다 사람들의 분노를 더 유발하는 것은 알에서 깬 새끼 뻐꾸기이다. 새끼 뻐꾸기는 알에서 나오자마자 두 날갯죽지를 크게 펼치고 있는 힘을 다해 뒷걸음질 치며 뱁새의 알을 하나씩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온 힘을 다해 힘겹게 세상에 나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한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생명의 희생까지 정당화 할 수는 없다.


 요즘 보면 뻐꾸기 같은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뻐꾸기를 날리는 사람들을 조심하고, 그들의 수법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지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쩌면 그 중에 소중한 가르침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르침을 소중하게 만드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 어떤 것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아무리 화려한 업적과 거룩한 목소리로 다가와도 진리가 빠져나가고 그 사이에 사욕이 들어 찬 사람들의 가르침을 걸러 들을 수 있는 지혜를 키워야 한다.


 혼자 둥지를 독차지한 새끼 뻐꾸기는 뱁새의 먹이를 받아먹는다. 거의 다 자란 새끼 뻐꾸기는 둥지가 작아질 만큼 몸이 커져 밖으로 나와서도 일주일 정도 자신보다 네 배나 작은 뱁새에게 여전히 먹이를 받아먹는다. 자신의 새끼를 죽인 새의 입에 쉴 새없이 먹이를 날라다 주는 뱁새의 모정은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자식을 지키는 듯 보인다.


 뱁새가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뱁새의 둥지 주변에 뻐꾸기가 나타나면 뱁새는 뻐꾸기를 경계하거나 공격하기도 한다. 행여나 자신의 둥지에 알을 낳고 가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뱁새는 자신의 알을 구별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한다. 뱁새의 알은 원래 푸른색이라 같은 색의 뻐꾸기 알과 구별하기 힘들었으나 살아남기 위한 진화로 인해 점점 알이 흰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바라건대 새벽에 우는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어미 뱁새에게 지은 죄를 생각하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를 짓고 그 죄책감에 눈물짓는 참회의 울음소리이길, 자신의 새끼로 인해 죄 없이 죽은 뱁새 새끼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울음소리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