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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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뜨락 | 고려시대에 있었던 장애인 협업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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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5-31 14:41 조회83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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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사회 전반적으로 협업이 새로운 트렌드이다. 콜라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보다 둘이 하면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함께 하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탈무드>에 나오는 시각장애와 지체장애가 힘을 합해 사과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사례를 종종 든다.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를 보면서 손이 닿지 않아 한탄하자 시각장애 친구가 내가 업어줄테니 사과를 따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여 합심으로 맛있는 사과를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협동 이야기가 있다. 고려 제7대 목종(穆宗, 980~1009년)때 강원도 철원 보개산 심원사라는 절에서 대종불사大鐘佛事를 하게 되어 스님들이 시주를 걷고 있었다. 각 고을 부인네들은 쌀 뿐만 아니라 깨어진 가마솥과 주발대접과 젓가락 부러진 것 등을 찾아내서 열심히 시주하였다. 이때 보개산 밑 대광리에 시각장애가 있는 이덕기와 지체장애가 있는 박춘식이 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죽마고우였다. 그들은 금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다음 생에는 건강하게 태어나자고 다짐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살았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여보시오. 시주님네 적선공덕 많이 하소. 한 물건 시주하면 만 배가 생기는 일, 부처님 가피로 모든 재앙소멸하고 현생에 복을 얻어 수명장수 이루소서.”라고 외치고 지나갔다. 덕기가 이 소리를 듣고는 시주하고 싶어졌지만 가난하여 시주할 쌀도, 쇠붙이도 없었다. 그들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가 ‘이렇게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우리도 저 화주승처럼 길거리에 나가서 시주를 걷도록 하자.’는데 뜻을 모았지만 한사람은 앞을 못보고 또 한 사람은 걷지를 못하니 불가능한 일이었다.


 “좋은 방법이 있다. 두 몸이 한 몸이 되면 되지 않겠느냐. 너는 걸음을 걷지 못하여도 눈이 성하고 나는 보지 못하여도 다리가 성하니 내가 너를 업고 다니면 되지 않겠니?”


 “맞다.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네가 다니면서 문전구걸을 하면 곧 시주를 거둘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해서 그들은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3년 동안 방방곡곡 다니며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쇠붙이를 모아 화주승에게 바치니 화주승이 감격하여 그들을 더욱 격려하고 감싸주었다. 종이 완성되고 절은 중수되어 회향재重修會向齋와 대종大鐘 준공식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두 사람은 이 소식을 듣고 평지도 아닌 태산준령을 넘어 보개산 심원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연천으로 가자면 계곡을 끼고 가기 때문에 고개가 없지만 물을 건널 수 없으므로 대광리에서 바로 태산준령을 넘어 오르기로 했다. 산에 오르니 구슬 같은 땀방울이 비오듯 떨어지고 입에서는 불꽃처럼 달구어진 숨결이 가슴턱을 쿡쿡 막았지만 화주승이 가르쳐 준 나무대자비 관세음보살을 한없이 부르며 간신히 그 산 마루에 올랐다. 그때 춘식이가 외쳤다.


 “저기 저 부처님을 봐라”

 

 “어디, 부처님이 어디 있어?”


 부처님은 허공 중천 오색구름에 싸여 둥실둥실 큰 빛을 그들이 사는 마을에 쏟으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덕기와 춘식이는 날이 밝도록 부처님께 절하며 서로 붙들고 울었다. 그래서 그 뒤부터 그 큰 재를 부처님을 뵌 고개라 하여 불견령佛見嶺, 부처님의 광명이 크게 내려 쏟아 비친 덕기, 춘식이 사는 마을을 대광리大光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보개산 심원사 대종불사기寶蓋山 深遠寺 大鐘佛事記에 나오는 역사이다. 그런데 설화적 요소가 있는 것은 시각장애인 이덕기가 눈을 뜨고, 지체장애인 박춘식이 벌떡 일어섰다는 이야기 때문인데 이것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부처님을 접하고 그렇게 느꼈다는 것으로 해석을 하면 진짜 있었던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두 명의 장애인 불사佛事 이야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둘이 힘을 모으면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