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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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 삼보귀의(三寶歸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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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4-28 11:13 조회95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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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부처가 되기 위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부처라는 말은 붓다(Buddha)라는 인도말을 한자로 음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중국인들은 붓다를 불타佛陀라고 표기했습니다. 그 말이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오면서 부처로 변한 것이지요. 불타를 줄여서 불佛이라고 하다 보니 여기에서 불교라는 말이 만들어졌습니다.


 붓다는 원래 눈을 뜬 사람이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진리에 눈을 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깨친 사람은 모두 불타라고 했지만 진리를 완전히 깨친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 분뿐이었으므로 나중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붓다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깨친 사람은 누구나 붓다라고 해야 하지만 어느 사이에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되었던 것입니다.


 불교,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불자, 혹은 불제자라고 합니다. 불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삼보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삼보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확산하는 모임인 승가의 3가지를 보물로 생각하여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세간의 금은보화 등을 ‘보寶’라고 하는데 그것은 세간의 재물보화이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존하고 확산하는 이른바 불, 법, 승은 법신혜명法身慧命의 보물로써 출세간의 재물보화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어 육도윤회를 벗어나겠다는 목표를 가진 불자에게 있어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다른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삼보만을 믿고 따른다는 맹세를 하는 것이며 불자로서의 기본자세와 목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삼보에 귀의한다는 맹세를 함으로써 불자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삼보에 귀의하는 의식을 거치지 않았다면 설사 부처님 전에 향을 사르고 예불한다 하더라도 단지 불교를 존중하고 흥미를 가진 사람일 뿐이지 진정한 불교도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학생이 학교에 정식 등록을 하지않고 수업을 들어도 영원히 청강생으로서 졸업장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청강생이라고 하여 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냥 와서 수업을 듣게 하는 청강생 제도가 있었습니다. 왜 그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지금도 이해가 잘 안가지만 그때는 아무튼 그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청강생이 나중에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비유하자면 삼보귀의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 불자가 된다는 것은 그냥 불교를 좋아하는 청강생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오래 청강을 해도 정식 졸업장은 받지 못하는 것처럼 삼보귀의의 의식을 거치지 않으면 참된 불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가장 먼저 할 일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을 서약하는 삼보귀의계를 받는 것입니다.


 삼보에 귀의歸依한다는 것은 삼보에 기대고 의지하여 도움을 청하고 보살핌을 받음으로써 많은 괴로움을 벗어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귀의는 귀명歸命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나의 온 생명을 바쳐 의지처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매달리고 의지하는 것처럼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사람들은 자기의 삶을 의지하고 든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도움이 필요하거나 무서운 경우를 당하면 엄마! 하고 부릅니다. 그러면 엄마가 보호자가 되고 조력자가 되어 어린이를 안심시키듯이 삼보에 귀의하는 것도 그러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험한 곳을 살면서 힘들고 두려울 때에 찾는 부모처럼 삼보는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에 찾는 대상이 됩니다. 귀의나 귀명이라는 말에는 그러한 의미가 있으므로 귀의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삼보에 귀의하는 것은 삶에서 자기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기도 하기에 마치 막막한 바다에서 나침반에 의지해 항로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나침반을 의지처로 삼아 거친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항구로 돌아와 쉴 수 있듯이 우리도 고해의 바다를 건너면서 삼보를 의지처로 삼고 나침반으로 삼아 마침내는 깨달음이라는 큰 집에 돌아가게 됩니다.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이처럼 우리 인생에 매우 중요한 시발점이 되며 삼보귀의의 의식을 거쳐 우리는 비로소 인생살이의 입학증을 얻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삼보귀의를 통하여 우리는 결국 영원히 편안한 깨달음이라는 집에 돌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