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위드다르마 연재글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지혜의뜨락 | 친밀한 사이의 정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9-30 13:34 조회1,026회

본문

39aa8cbbb167d502986d18b08787c784_1664512491_657.png
 



 내가 맡고 있는 ‘솟대평론’의 가장 큰 행사는 구상솟대문학상이다. 이 상은 2015년도에 경제적 어려움으로 통권 100호를 끝으로 폐간된 <솟대문학>에서 제정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에서는 1991년부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솟대문학상을 시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지금은 고인이 되신 구상 선생님께서 상금을 마련해주셨다. 구상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5년 전쯤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솟대문학상 상금을 미리 내놔야겠다’고 하시며 5천만원을 주셨다. 그때가 2000년이었다. 5천만원은 너무나 큰돈이기에 나는 그 돈을 들고 바로 은행으로 가서 적금을 들었다. 2년 후 구상 선생님은 5천만원을 더주셨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서재를 정리하셨다며 1억을 또다시 내주셨다. 상금으로 사용하라는 것 외에는 그 어떤 단서도 붙이지 않으셨다.


 2004년 구상 선생님께서 소천 하신 후 2억이라는 구상솟대문학상 기금이 마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애시인들에게 구상솟대문학상은 가장 영예롭고 권위 있는 상이 되었다. 2022년 수상자는 뇌성마비로 보행은 물론 언어장애까지 있는 설미희 시인이다. 설시인은 가정 폭력의 피해자로 아들과 함께 살며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오로지 시심詩心 하나에 의지해 시인으로 성장하였다. 설미희 시인은 장애 때문에 장애인 소재 글을 쓰는 것을 거부하는 대신 오히려 장애에 대한 경험으로 장애인의 현실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시어詩語로 전달하고 있다.


 구상솟대문학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안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맹문재 교수는 ‘설미희 시인의 시 쓰기는 단순한 취미나 재능의 표현이 아니라 생을 영위하고자 하는 절박한 바람이면서 구체적인 행동이기에 폐부를 찌른다’고 극찬하였다. 2022년 수상작 ‘친밀한 타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눈을 떴다

온 우주에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몸만 둥둥 떠 있다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 있는

이 잔인한 귀도 눈을 뜬다


지금은 

남의 손이 아니면

소변조차도 뽑아낼 수 없는 몸뚱아리

알람 소리에

감정 없는 기계적인 메마른 손길이

아랫도리에 관을 꽂는다

바우처 카드 720시간

늙은 여자가

친절하게 바코드를 찍는다


연명을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해서

소변 줄을 꽂아 주고 있을까

집 안 가득

소변 줄을 타고

아직 살아 있다는

존재의 냄새가 난다


 시 ‘친밀한 타인’은 중증의 장애인과 활동지원인의 관계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화자는 하루 24시간 돌봄이 필요하고 타인은 나이가 많고 경험이 풍부한 직업인이다. 사람은 죽은 듯이 잠에 빠져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면 눈을 뜬다. 화자는 눈을 뜬 순간 움직여지지 않은 몸이 인식되어 한없이 무력해진다. 눈과 함께 귀도 떠져서 세상 이야기들이 귓속으로 들어오는데 화자는 그런 일상에서 배제된 삶이기에 보고 듣는 일이 잔인한 고문이다.


 화자는 이렇게 매일이 고통스러운데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기계에 의존해서 일어난 활동지원인은 화자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이 은밀한 곳을 함부로 드러내게 하여 소변줄을 끼운다. 그리곤 바우처를 찍는다. 그것은 돈을 버는 행위이다. 그녀도 살기 위해 역겨운 소변줄 꽂기를 하는 것이다. 화자는 소변줄에서 새어나온 지린내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인 사이는 친밀한 관계이다. 목욕도 시키고, 화장실도 함께 들어간다. 가족이 아닌 남에게 몸을 보여준다면 친밀한 사이임에 분명하지만 활동지원인은 그것이 직업인 타인에 불과하다. 장애문인들을 위해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던 구상 선생님은 지금 우리 곁에 없지만 온기를 주신다. 장애문인들의 어른이고, 스승이며 영원한 영웅이시다. 친밀하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지 않으면 생길 수 없는 관계인데 우리 사회는 마음이 없이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친밀한 사이가 많아 약자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