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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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기울어진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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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8-30 13:08 조회1,1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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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또 그들을 만났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아침, 작은 우산에 몸을 의지한 그들, 한 쪽 다리를 끄는 아들과 그의 불안정한 걸음걸이에 보폭을 맞추는 어머니를. 큰길에서였다면 으레 피했을 테지만, 여느 때와 달리 골목 어귀에서 마주친 터라 슬그머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수도 없이 마주쳤지만 단 한 번의 목례조차 주고받지 않고 지나치는 것, 그게 모자와 나의 인사법이었다. 마음으로야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드님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요, 힘내세요, 하면서 응원의 말 몇 마디쯤 건네고도 싶지만 때로 사람에게는 속속들이 내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도 있는 법. 절망과 슬픔을 되새김질하게 하는 섣부른 위로보다 무심한 듯 그저 눈 감고 지나가 주는 게 나을 때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골목 어귀에 선 채 속으로 한 발 두 발 그들의 느린 걸음걸이를 가늠해 보다가 천천히 뒤돌아본다. 장마철이라 예비로 들고 나왔음직한 작은 우산으로 180cm는 좋이 됨직한 아들의 머리를 가려 주느라 까치걸음을 하다시피 걷는 어머니의 키는 150cm 남짓? 흠뻑 젖은 몸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을 높이 뻗어 우산대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종이 인형처럼 흔들리는 아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저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대상조차 가늠할 수 없는 기도가 가슴 가득 차오른다.


 사실 나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그들 모자를 생각하고, 그때마다 어떻게 하면 그들 모자와 마주치지 않을까 궁리를 한다.

딴에는 배려인 그 얕은꾀는 번번이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어쩌다 한 번씩 그들이 보이지 않으면 웬일일까 싶어서 목을 쭉 빼고 이리저리 살피는 게 또 다른 나의 습관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들 모자는 아침 운동을 거르는 날이 없었고, 움직이는 시간도 일정했다.

 아니, 나는 그들 모자가 얼마나 일찍 나가서 얼마나 많은 걷기 운동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집을 나서는 일곱 시쯤, 이미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들 모자와 스쳐 지날 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 모자에 대해 마주치기 싫다느니, 저만치 보이기만 해도 다른 길로 빙 돌아간다느니, 이러고저러고 희떠운 소리를 하는 건 그 어머니의 간절함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 손에는 아들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늘 접이식 휴대용 방석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시는 것 같아서였다.


 오늘, 어머니는 아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아들을 대신해 비를 흠뻑 맞고 있다. 아마도 어머니의 시선은 아들의 전부를 향하고 있을 것이다. 아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싶었을 어머니, 아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고 싶었을 어머니, 마침내 아들을 절망 끝에서 일으켜 세울 저 어머니. 불가에서는 부모를 ‘목숨이 있는 동안은 자식의 몸을 대신하기 바라고, 죽은 뒤에는 자식의 몸을 지키기 바라는 존재’라고 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깊고 깊은 사랑이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서 말서 되나 되는 엉킨 피를 흘리고, 자식에게 여덟 섬 너 말이나 되는 흰 젖을 먹이기 때문에 여자의 뼈는 검고 가볍다.”라는 부처님의 말씀에 더해 저 어머니의 뼈는 더욱더 검고 더없이 가벼울지도 모른다.


 세상에 차고 넘치는 내리사랑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치사랑도 존재한다. 『부모은중경』의 말씀처럼 효심孝心이 곧 불심佛心이라는 가르침을 일깨워 주던 이들 중에는 수년 전, 역시 아침 운동 길에 만났던 90도로 허리 굽은 늙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느린 걸음에 맞춰 걷다 쉬기를 반복하던 중년의 아들이 있다. 앞으로 고꾸라질 듯 위태롭게 몇 걸음 걷고 멈추기를 거듭하다가 소나무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의 모습은 한없이 위태로워 보였고, 부축 한 번 하지 않은 채 그런 아버지를 채근하는 아들의 눈빛은 냉정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운동 길에 마주치는 그 누구도 아들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늘 두어걸음 뒤에서 가만가만 아버지를 따라 걷는 그의 더딘 걸음에서, 소나무에 기대어 허리를 펴거나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는 아버지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땀을 닦아 드리기도 하고 다리를 주물러 드리는 그의 투박한 손길에서 아버지를 수백 번도 더 업어 드리고 싶었을 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던 부자를 다시 만난 건 2년쯤 후였다. 앞선 사람이 걸으면 뒤선 사람도 따라 걷고, 앞선 사람이 멈추어 서면 따라 뒤선 사람도 멈추는 그 익숙한 모습은… 반갑게도 그 아버지와 아들이었다. 허리 수술을 했는데 회복도 느리고 재활도 힘들어서 1년 넘게 죽을 고생을 했다면서 그나마 그동안 우리 아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사지다, 근력운동이다, 서두르는 통에 이제는 이렇게 펄펄 날아다닌다며…. 결코 펄펄 날아다니지 못하는 아버지는 굽은 허리를 애써 펴면서 아들 자랑에 침이 말랐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걷는 늙은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말없이 아버지 뒤를 따르던 중년의 아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돼 주는 게 또 부모 자식의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적을 만들어내는 건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모님의 헌신과 부모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자식들의 순응이다.

 효도는 백 가지 행行의 으뜸이라고 했다. 효심이 곧 부처의 마음이고 효행이 곧 부처의 삶인 바, 부처와 같아지려면 반드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여기에 담긴 효는 내리사랑과 치사랑, 자식에게로 향하는 부모의 헌신과 부모에게로 향하는 자식의 순응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쏟아지는 비에도 내 어깨가 젖지 않았다면, 느린 걸음 탓하지 않고 말없이 함께 걸어주는 이가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곧 추석이다. 이번 명절에는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부모은중경』에서 이르듯 ‘고향을 떠나 바삐 살아가는 자식을 따라 마음을 사방으로 기울이며 창가에 머리를 얹고 기다리는’ 부모님의 젖은 어깨를 안아드릴 수 있기를. 아마도 그날, 풍수지탄風樹之嘆에 먼산바라기가 고작일 나 같은 이도 적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