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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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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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6-20 17:22 조회1,08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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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스러운 얼굴은 아니라고 고백한 법정스님 말씀에 위안” 


 가끔 TV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서 세월이 사람을 참으로 많이 바꿔놓는다는 사실에 놀랄 때가 많다. 어느 분은 젊을 때나 노년이 되어서나 한결같이 준수한 모습이라 존경심이 가는가하면 어느 분은 몰라보게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해 놀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 차이가 주는 교훈에 주목하게 된다. 얼굴이란 말이 ‘얼꼴’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얼굴은 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나이가 40살 이상 되면 자기 얼굴은 자기가 책임지라는 말처럼 살아간 흔적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면 피부 곳곳에 주름들이 지난 세월의 기억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러면서 “야 너 참 고생 많았구나… 더 내려놔야지…” 하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사실 얼마 전 TV에서 나를 본 주위 사람들로부터 피부나 머리 등 성형적으로 신경을 써보면 어떻겠느냐 하는 조언을 들었다. 물론 나를 염려해주고 격려해주심에 감사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가 됐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그래도 젊은 시절엔 꽤 동안이라는 이야기도 듣곤 했는데, 참 내 공부가 많이 부족했구나. 뭐 이 정도면 남을 뭐라고 할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불교를 모토로 살아온 인생인데 남과 뭔가는 좀 다른 점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처님 덕분에 이 정도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사회적으로 모범이 되기는 커녕 걱정까지 끼칠 정도다? 그렇다면 한참 반성해야 하지 않은가? 한 때는 ‘뭐 이 정도면 괜찮지’ 하고 스스로 위안하던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실로 아쉽고 부끄럽고 많이 부족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얼마 전 어느 스님께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드리며 면목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안부 인사 제대로 드리지 못했고 찾아뵙고 지혜를 구하지도 못했고 변변한 도움 하나 드리지 못해 이런 저런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저 면목이 없다는 말이 나온 것 같다.


 그랬더니 스님께서는 무슨 면목이 없다는 거냐며 격려하셨다. 다른 직장을 기웃하지 않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포교 방송에서 오랫동안 일한 공덕도 적지 않다는 말씀이신 것 같다. 정작 나는 방송국에서 일한다는 핑계로 스님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송구스럽기만 한데 말이다. 스님의 너른 도량과 자비에 고개가 숙여진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은 생전에 어느 법회에서 솔직한 마음을 토로했다. 상좌인 덕조 스님이 낸 법문집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법정 스님은 가끔 거울을 보는데 당신 얼굴이 그렇게 자비스러운 얼굴이 아니라고 고백하셨다. 사람들로부터 찬바람이 불고 서슬이 퍼렇다는 말까지 들으셨다고 한다. 수행자가 시줏밥 먹고 살면서 얼굴이 이렇게 굳어서 되겠느냐고 늘 반성하는데 그게 잘 안 고쳐진다고 하셨다. 또 혼자 있을 때는 편하니까 웃기도 하고 혼자 싱거운 짓거리도 하고 편한데 밖에 나오면 긴장이 된다고 하셨다.


 이런 법정 스님 말씀에 다소 위안도 된다. 스님처럼 출가 정진하지도 못했고 세속에 살면서 별다른 깨달음을 갖추지도 못했으니 뭐 얼마나 얼굴이 특별히 맑고 자비스러움 같은 것이 드러나겠나. 인생지사 모두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다 그 전에 살아온 모습이 드러난 것이니 당연지사가 아닌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랫동안 공덕을 닦아 32상 80종호 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었다고 한다. 그에 덧붙여 부처님께서는 크나 큰 지혜와 복덕을 구족하시니 양족존兩足尊이시다. 그러니 우리 모두 포기하지 말고 지혜와 복덕, 공덕을 닦아 나가자 다짐을해본다. 꾸준히 노력하는 일 밖에 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 길을 가는 편이 제일 낫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