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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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 |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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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27 12:13 조회2,4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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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다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 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리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박완서-일상의 기적 >

 

정말 그렇다. 인간의 몸 중 쓰임새 없는 곳이 어디 있으며, 또 그 쓰임새에 맞게 잘 움직여주는 것은 또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다치거나 나이가 들어 우리 몸 어느 한 부분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뿐만 아니라 사소하게는 종이에 손가락을 베였을 때도 우리는 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이지만 손을 씻거나 할 때 평소와는 다른 상황에 많이 불편해한다. 그렇게 불편한 상황이 되고 나서야 항상 우리는 내 몸 곳곳에 대한 소중함과 손을 다치지 않았을 때의 여느 보통 날들 즉 평범했던 일상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였던가. 상처가 낫고 나면, 또 많이 불편했던 몸이 치료 등을 통해 좀 괜찮아지게 되면 내가 언제 너를 소중히 했냐는 듯 다시 제멋대로 굴기 바쁘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그래 맞다. 잃고 나서 후회하고 안타까워해 봐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잃어버린 것을. 그러니 내 몸 곳곳에서 아프다 신경 써달라 아우성치면서 그래도 내가 좋다고 나에게 붙어있을 때 아차! 하며 얼른 소중함을 깨달아주자. 이는 비단 건강뿐만이 아니다. 나의 가족, 친구, 내 몸 하나 편히 누이고 쉴 수 있는 집, 또 내가 이 땅에 발 붙이고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산소와 중력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과 내가 살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크고 작은 그 모든 것에 감사함을 가지자.

 

익숙하다고 하여,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행동했어도 아무런 문제 없었다 하여 당연히 그대의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 생각지 마라. 생각하고 신경 써주고, 표현해주지 않으면 내 몸조차도 온전히 내 뜻대로 움직이는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될 테니.

 

그러고 보면 정말 내가 걷고, 뛰고, 먹는 게 너무도 당연해서 평소에는 소중하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점점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파보니 평범한 나날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 정말이지 당연한 것이 어디 있으랴. 당연한 것이 그대로 당연한 일이 될 수 있게 좀 더 알아주고 신경 써주어야 하는 나이가 나도 되었나 보다.

 

갑자기 요 며칠 전, 20대 후반이 된 딸아이가 아빠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봐. 이전에는 소화가 엄청 잘 됐는데 요즘은 많이도 못 먹겠고 먹고 나서 열심히 움직여줘야 소화가 돼라고 하더라. 아직 어리게만 느껴지는 딸아이가 그런 말을 하니 사뭇 웃기고 어이없었지만 사실 맞는 말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많이 사용하였으니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노쇠하는 건 당연한 이치리라. 내가 아무리 가는 세월 붙잡고 싶어도 붙잡아지지 않으니 이러한 순리 속에서 최대한 녹이 덜 슬도록, 계속 굴러가게끔 자주 들여다보고 기름칠을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서 말했듯 건강뿐만이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 등 모든 것에 있어서 당연하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니 항상 있을 때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