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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늦된 봄, 선재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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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13 15:12 조회2,55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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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된 봄, 선재길에서

 

오랜만에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선재길을 찾았다. 선재길이라는 이름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던 젊은 구도자 선재 동자가 53명의 현인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는 화엄경에서 유래한다. 지혜와 깨달음을 얻고자 길을 나섰던 선재 동자처럼 이곳을 찾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치유하고 깨우침을 얻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계곡을 따라 숲과 물을 넘나드는 이 조붓한 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도로가 생기기 전, 스님과 불자들이 오가며 마음을 닦았던 길이며, 일제 강점기 목재 수탈과 노동력 착취의 현장이기도 하고, 화전민의 애환이 서린 길이기도 하다.

 

9km 남짓한 선재길의 시작은 월정사다. 월정사의 들머리라고 할 수 있는 매표소에서 200m 정도 올라가면 금박 글씨로 월정 대가람’(月精大伽藍)이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나오고, 여기서 금강교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약 1km의 흙길이 길이 천년의 숲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찰로 가는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는 이 숲길을 따라 월정사로 향하다 보면 왼쪽으로는 상원사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오른쪽으로는 1,000여 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어우러진 울울창창한 숲이 고즈넉한 위로와 안식을 안겨준다.

 

전나무의 나이는 평균 80, 최고령 나무는 370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 옛날, 수령 500년의 전나무 아홉 그루에서 씨가 퍼져 지금의 울창한 숲을 이뤄냈다고 하니 자연의 위대함에 비하면 사람의 삶이 한 점 티끌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과 선()의 경계인 듯, 그 숲길의 끝에 월정사가 있다. 신라 선덕여왕 12(643)에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갖고 돌아와 세운 사찰,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머무르는 불교 성지로 사랑을 받아온 천년고찰 월정사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는 잠시 묻어두기로 한다.

 

월정사 앞 금강연을 거쳐 이어지는 선재길로 접어들면 참나무와 소나무, 낙엽송, 물푸레, 느릅나무, 신당 나무, 단풍나무 등 다양한 나무와 철 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 투명한 햇살, 차고 맑은 물, 청명한 바람, 온갖 산새들의 지저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을 열어준다. 지친 다리는 깊은 숲 그늘이나 오대천 청량한 물소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도 좋다. 지장암과 지장폭포를 지나고, 일제강점기에 베어낸 나무를 가공하는 회사(제재소)가 있던 터로 화전민이 모여 살았던 회사 거리를 거쳐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와 함께 섶다리를 건너고 오대산장, 동피골, 출렁다리를 건너다보면 이윽고 다다르는 곳이 월정사의 말사 중 하나인 상원사다.

 

쉬엄쉬엄 걷는 동안 청량함으로 몸과 마음을 채웠다면 이제는 일상의 번뇌와 번거로움에서 자유로워져야 할 시간. 상원사는 비교적 쉬운 길을 버리고 108개의 가파른 오르막 계단길 번뇌가 사라지는 길로 올라야 제맛이다. 상원사 턱밑에 도착해서 고개를 살짝 젖힌 채 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것도 좋거니와 계단 초입에서 만나게 되는 <오대 서약>도 매번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나. 다른 생명을 아끼면서 함께 살아갑시다.

. 남의 것 욕심내지 말고 자기 살림을 아낍시다.

. 맑은 몸과 정신을 지니고 바른 행동을 합시다.

. 남을 존중하고 말씀을 아낍시다.

다섯. 밝은 생활을 하면서 좋지 못한 것을 하지 맙시다.

 

수 시간 동안 선재길을 걸어온 까닭 중 하나가 이 번뇌가 사라지는 길과 오대 서약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고 싶어서이다. 평범한 것 같은 한 구절 한 구절이 곧 쉽게 풀어 전하는 부처님의 말씀인 오대 서약을 음미하노라면 오대 산문에 든 후 열반하기까지 27년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수행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셨던 한암(1876-1951) 스님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스로 수졸이라 낮추었던 스님의 삶이 7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따뜻한 울림으로 전해진다.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우직한 태도를 고집하여 본성을 고치지 않는 수졸(守拙)의 삶이라니. 그 겸허함을 담아 면면히 이어오는 오대 산문의 가풍이 곧 오대 서약이리라. 오대 서약으로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108 염주를 굴리듯 108계단을 오르노라면 불자가 아닌데도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올라 상원사 마당에 서면 스님의 눈길이 머물렀을 천지사방이 고요한 울림으로 다가선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이라는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세속의 권력과 위기에 굴하지 않았던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릴 듯하다. 봉은사 조실 자리를 지키면서 춘삼월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가 되느니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되겠다며 오대 산문에 들었을 만큼 불의에 단호했고 참선과 간경, 염불, 의식, 가람수호의 승가 5칙을 만들어 엄격한 수행의 본분을 후학들에게 전했던 강직한 수행자이자 매일 새벽예불에 나아가 선 채로 2시간의 관음 정근에 참여하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선원 대중 방에 반듯하게 앉아 참선하면서 오후 불식을 하는 등 검박한 생활을 솔선수범하며 부처님의 계율에 맞춰 사셨던 큰 스승 한암 스님.

 

그대는 군인이니 명령을 따르는 것이 본분이요, 나는 출가수행자이니 법당을 지키는 것이 본분 아니겠소. 나야 죽으면 어차피 다비茶毘에 붙여질 몸. 둘 다 본분을 지키는 일이니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불을 지르시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퇴각하던 국군이 북한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오대산 내 모든 절을 불태워 없애던 때였다. 월정사가 전소된 후 상원사에도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잠깐의 말미를 얻은 스님은 가사와 장삼을 갖춰 입고 법당에 정좌한 채 상원사와 한 몸이 되어 불태워질 것을 선언하고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스님의 기개에 감화한 소대장은 상원사를 불태운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전각의 문짝만을 모두 뜯어내 마당 한가운데 모아놓고 불을 지르라 명했다. 온몸으로 상원사를 지켜내고자 했던 스님의 강직함과 그 역시 불자였던 것으로 전해지는 소대장의 묘수가 상원사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국보 제36)을 지켜낸 것이다.

많은 것들이 눈으로 들어와 마음을 채우고, 채워진 그것들이 또 마음을 비워 주는 선재길의 끝 상원사에서 돌계단과 흙길을 40여 분 더 오르면 만날 수 있는 적멸보궁(정확히 말하면 전각 뒤쪽 작은 언덕에 선 세존진신탑묘)의 바람 소리가 궁금하다면. 그대, 늦된 봄 피앵화 피는 선재길에서 귀 기울여 보시라. 가만히, 아주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