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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 지관쌍운과 오정심관 4 – 수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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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1-04 14:02 조회2,90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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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쌍운과 오정심관 4 수식관

 

마하박가등에 묘사된 부처님과 제자들의 생활태도를 보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소한 물건까지도 모두 아끼고 잘 보존하며, 주위를 청결히 하고 정리 정돈을 잘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식관을 닦는 데에 이렇게 가사와 발우를 챙기고 발을 씻는 것을 거론하신 것은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거지 차림을 하고 더러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도사인 체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그런 것은 다 사도의 무리이고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떨어진 옷이라도 깨끗이 빨아 입고 생활태도가 바른 사람이 도를 닦아도 제대로 닦는 것이지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서 환경을 돼지우리같이 더럽게 해 놓고 생활하는 사람이 무슨 도를 닦겠습니까?

 

예전에 걸레라는 별명의 이상한 사람 하나는 거지 차림을 하고서 한 소식 한 스님인 체 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적이 있었습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그런 사람은 기인이라고는 할 만하지만 부처님의 법에 비추어 볼 때는 수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무슨

무애행無碍行을 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을 현혹하다가 죽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니까 한때를 풍미했겠지요.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그런 기이한 행동 같은 것은 결코 없습니다.

 

지혜가 있는 우리 불자들은 행여나 그런 거짓 놀음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술 마시고 고기 먹고 음행을 저지르고 거지차림으로 북 치고 장구 치며 돌아다니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깨달은 사람은 그런 짓 하지도 않습니다.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짓 하면서 불교를 욕되게 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단정해야 수행도 제대로 되고, 또 수행을 제대로 한 사람은 몸과 마음이 단정하다는 것만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수식관을 닦는 것에 의하여 몸과 마음이 바르게 된 상태에서 가만히 마음을 붙들어 매고 탐욕과 성냄, 정신이 혼미한 혼침과 수면을 경계하고 마음이 들뜨는 도거악작과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인 오개의 번뇌를 멸할 수 있습니다. 수식관의 목적이 숨을 쉬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호흡의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관찰함에 의하여 이러한 번뇌를 끊기 위한 것이 수식관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식관을 효과적으로 닦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변을 정돈함으로써 탐욕과 번뇌를 제거하는 정지작업이 더욱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수식관을 닦음으로써 오개의 번뇌를 멸할 수도 있지만, 역으로 오개의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에 의하여 수식관이 더욱 효과적으로 닦아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수식관의 좀 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경전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들숨을 생각하면서 생각을 잡아매어 잘 공부하고, 날숨을 생각하면서 생각을 잡아매어 잘 공부한다. 긴 숨이나 짧은 숨 등 몸에 들어오는 모든 숨을 깨달아 알고 잘 공부하며, 몸에서 나가는 모든 숨을 깨달아 알고 잘 공부한다.

 

호흡은 정념이 바탕이 됩니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에 대해 깊은 주의를 기울이면 정념이 시작됩니다. 이 단계에서 들숨과 날숨을 쫓는 것이 정념인가, 아니면 마음이 들숨과 날숨을 쫓아가도록 하는 것이 정념인가를 구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코끝에서 시작해서 배꼽에서 끝나며 숨을 내쉴 때는 배꼽에서 시작해서 코끝에서 끝나는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물론 실제로 숨이 배꼽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숨이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 코에서 배꼽에 이르는 호흡의 공간이 긴 것인가 짧은 것인가에 대한 관찰도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잠시도 쉬지 않고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수식관입니다.

 

이런 수행은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어려운 수행법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삼 일이 걸릴 수도 있고, 삼 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몸의 행위를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을 통해 깨닫고 기쁨, 즐거움 등의 마음의 움직임을 들숨과 날숨을 통해 깨달으며 마음의 기쁨과 평정, 무상, 무욕 등에 대해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깨닫는다고 경전에서는 설하고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 수식관만 잘 닦아도 큰 공덕을 얻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안나반나념을 잘 닦으면 큰 결과와 큰 복과 이익을 얻는다. 만일 비구가 탐욕과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과 관이 훌륭해지고 욕계의 악을 여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을 완전히 성취하여 머물고자 하면, 그는 안나반나염을 닦아야 한다.

 

이처럼 수식관은 욕계의 악을 여의고 초선을 얻을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경전에서는 이어서 초선뿐만 아니라 제이선, 제삼선, 제사선을 얻으며, 무색계 사선에까지도 이르고,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과는 물론, 마침내 누진지를 포함한 육신통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수식관은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수행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