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뜨락 | 정말 멋진 깐부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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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12-13 11:32 조회3,43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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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렉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세계 각국에서 시청율 1위를 차지하며 k-컬쳐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기사에 도대체 어떤 드라마이길래 이토록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나 싶어서 소위 요즘 말하는 몰방(몰아보기)를 해보았다.
드라마를 보고난 기분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하면 ‘아프다’이다. 인간이 어쩌다 이토록 돈의 노예가 되었나 싶어서 슬픔을 너머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비판하고 싶지 않다. 총으로 쏘아 피를 흘리며 죽이지는 않아도 우리 사회는 경쟁이라는 혹독한 구조 속에서 사회적 타살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징어게임>의 유일한 노인 오일남이란 캐릭터에 포인트가 있다고 본다. 오갈 곳 없는 늙고 병든 오일남이 오징어게임의 기호1번을 달고 있었다. 가장 먼저 게임에 신청한 만큼 돈이 필요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알고 보니 오일남은 그 오징어게임을 주최한 최고 vip였다. 그는 이 죽음의 게임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삶은 짧아. 돈이 너무 많으면... 결국 시시해져버려. 더 이상 즐거운 게 없다구. 뭘 하면 재미있을까?’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인다. ‘어렸을 때는 뭘 해도 재미있었지’ 그래서 <오징어게임>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등의 1950~60년대 놀이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이 있어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간의 목표이며 과제일 것이다. 드라마는 456명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456억을 가져가는 게임을 펼치며 인간이 갖고 있는 본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같은 편이 되면 신뢰하고 그러다 경쟁 상대가 되면 배신하는 이중성을 여과없이 노출시켰다.
할아버지의 정체를 알고 배신감을 느끼는 자기 깐부였던 기훈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사람을 믿나?’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된 것을 일깨워주는 대사이다. 오징어게임에서 깐부로 한편을 먹던 어린 시절에는 아무런 조건 없이 신뢰하는 깐부 사이가 될 수 있지만 성인이 되면 이러저러한 조건을 붙이면서 상대를 불신하기에 깐부가 될 수가 없는 슬픈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오일남 역을 한 배우 오영수는 드라마 못지않게 드라마틱한 인생이다. 올해 78살로 19살에 연극 배우로 데뷔하여 58년 동안 무명 배우로 살았다. 58년 동안 수많은 단역을 맡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이번에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갑자기 스타가 되어 여기저기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인기를 실감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영수 배우는 깐부치킨에서 광고 요청이 들어왔지만 그는 그것을 거절했다. 그 이유는 ‘연기 장면이 흐려질까봐’이었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모두 경험하며 조용히 눈을 감은 일남의 역할이 광고 속의 가벼운 모습의 영수 때문에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배우이다. 우리는 흔히 배우는 인기로 돈을 버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배우는 스크린 밖에서도 그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에 머리가 숙여진다.
시청자들은 78살의 노배우 오영수와 깐부를 맺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58년 동안 묵묵히 한길을 걸어온 것은 그 일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고, 성공한 후에도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오로지 연기와 깐부하는 모습에서 신뢰는 물론이고 존경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오영수배우는 사극에서 고승 역을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서 출가자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인도 싯타르타태자가 부처님이 된 것은 화려한 궁중생활이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밖으로 나가 동서남북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하면서 동문에서는 노인을 보고, 남문에서는 병자, 서문에서는 죽은 사람 그리고 북문에서는 수도승을 만났다. 태자는 늙고 병들고 죽음 모두 고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고통의 문제를 풀기 위해 태자는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지금 이 순간 가장 절실히 떠오르는 것은 무소유이다. <오징어게임> 속 일남은 많은 것을 소유하였으나 늙고 병들어 죽어가며 인생이 참 짧다고 하였다. 살면서 우리가 소유하는 것은 물질적 재산이 아니라 정신적 깨달음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