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비소리 | 불교와 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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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1-27 13:32 조회3,97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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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메멘토 모리
“자기 마음 돌아보는 자심반조로 생사 넘는 열반의 삶 지향”
우리는 평소 수많은 죽음을 목도한다. 특히 지난해 초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가 9천여만 명에 희생자만 백 90여만 명을 넘는 등 공포를 몰고 오고 있다. 이처럼 삶이라지만 죽음이 늘 함께 하고 있음을 잊지 않는 자세를 일깨우는 말이 ‘메멘토 모리’일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날짜를 기다리는 사형수에 비견되기도 한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상생활에서는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는다. 다행히 망각 내지는 회피 본능이 이른바 ‘정상적인’ 삶을 지탱해 준다.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적극 대면하는 게 낫다. 한 가지 방법은 언제 죽더라도 후회없이 죽겠다는 자세일 것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후회 없는 삶이 되고 죽음의 두려움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죽음이 무엇인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겠다는 적극적 자세라기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자세이다.
죽음이 뭔지 관찰하고 따져보는 죽음명상을 해보자. 죽음을 대면할 때 그 실상을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공포도 극복할 수 있고 그에 매이지 않게 된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생과 사가 다르지 않다는 생사불이(生死不二)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늘 죽음에 대해서만 생각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생로병사라고 하는 인생의 큰 흐름을 조망하자는 것이다. 삶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여 허덕일 때 한번쯤 죽음을 생각해보고 지금 이 순간 어떤 자세로 살아나갈지 점검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좋겠다.
불교에서는 모든 게 태어남(生)이 있으니 벌어진 일들로 본다. 그래서 삶의 네 가지 측면인 생로병사를 두루 조망하여 바른 인식과 생활을 이끌도록 유도한다. 불교가 불사(不死)를 지향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불생(不生)을 지향한다고도 할 수 있다. 태어나고 죽는 흐름, 즉 윤회를 하지 않는 일 말이다.
대승적인 입장에서는 윤회마저도 원생(願生)으로 바꾸어 버린다. 사실 불교는 처음부터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생구제를 위한 원력으로 얼마든지 사바세계에도 나고 지옥행도 불사한다. 이런 데서 지장보살과 같은 원력 보살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보살까지는 아니어도 만일 사랑하는 부모형제가 지옥에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혼자서 천당 간다고 기쁠 사람이 있을까.
우리에게는 만사가 화두요 명상 재료가 될 수 있다. 언제 어떤 일이건 새로운 자세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탄력성이 요구된다. 내가 파악한 것이 진실인가? 그것이 진실인지 확실히 알 수 있나? 그것을 믿을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나? 그 생각이 없다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미국의 명상지도자 바이런 케이티는 위 네 가지 질문와 뒤바꾸기에 의해 사람들을 바른 견해와 힐링으로 이끌었다. 어떤 분별심도 붙이지 않고 오롯이 ‘이 뭣고?’ 하는 방법과 달리 분별심을 활용한 질문과 생각 훈련으로 자기를 돌아보게 한다. 새로운 자심반조(自心反照) 방법이다.
우리는 집착 없고 머무름 없는 무주처열반(無住處涅槃)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삶의 순간순간 경험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 작지만 의미있는 해탈의 맛을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