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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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성성취 | 행복한 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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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0-06 15:27 조회4,1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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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길고양이

 

얼마 전부터 단음사 사택 현관문 옆 신발장과 서랍장 사이의 작은 공간에서 길고양이가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려와 키우고 있다. 험난한 길고양이의 삶에서 그나마 단음사 사택 현관문 옆 작은 공간이 안전하다고 느꼈나 보다. 총지종의 규정상으로 스승은 사원 내에서 동물이나 가축을 사육하지 못하지만 내가 직접 키우는 것이 아니니 새끼 고양이가 잘 성장해서 떠날 때까지 지켜봐 줄 생각이다.

 

혼자 사는 공간에 새 식구가 생겨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 고양이들이 놀라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신경을 쓴다. 지금은 내가 많이 익숙해졌는지 어미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가 나와 마주쳐도 놀라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본다.

 

남해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서 여러 마리의 고양이를 돌보고 있어서인지 살겠다고 찾아온 작은 생명들을 매몰차게 내쫓을 수 없었다. 얼마 전 9호 태풍 마이삭과 10호 태풍 하이선이 비바람을 몰고 와 밤새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 없었지만 그래도 고양이들이 태풍의 비바람을 견뎌내고 잘 지내는 것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고양이들을 보면서 인간의 삶이나 동물의 삶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고양이는 길고양이로 살고, 어떤 고양이는 집고양이로 산다. 어떤 길고양이는 저급 사료조차 제대로 못 먹고, 어떤 집고양이는 사람도 못 먹는 고급 사료를 먹는다. 어떤 길고양이는 담벼락 밑에서 비를 맞으며 자고, 어떤 집고양이는 인간의 침대에서 함께 잔다.

 

그렇다고 해서 꼭 길고양이의 삶이 불행하고, 집고양이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껴지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집고양이는 인간의 욕심과 집착에 얽매여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못 살지만 길고양이는 주변에 위험 요소들이 많지만 그래도 마음은 행복하지 않을까?

 

길고양이를 보면 어릴 적 나와 많이 닮아 있다.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했던 시절,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피해 다니던 어린아이. 세상은 불행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던 시절. 그래도 그 아이의 마음만은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온갖 위험에 둘러싸인 저 길고양이처럼.

 

사람이든 동물이든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인간들의 서원으로 만들어낸 것이 종교라고 생각한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그 서원은 결국 모든 사람이 다 함께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다 함께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발전했다. 나만 천국에 가면 돼, 우리들만 천국에 가면 돼,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종교인은 진정한 종교인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뉴스를 보면 이러한 종교인들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행복해지고자 하는 마음은 아름답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발전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 행복이란 바로 마음이 아름다워진 상태가 아니면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모를 때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느낀다.

 

종교인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아름다워져야 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아름다움에 눈멀 때까지, 세상의 모든 영혼들이 당신을 가슴에 품을 때까지, 세상 전부가 당신의 아름다운 향기에 취할 때까지, 세상이 온통 당신의 아름다움으로 물들 때까지. 하지만 언제나 당신의 내면이 가장 아름다워야 하며, 당신의 삶이 가장 아름다워야 한다. 진정한 종교인이라면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