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 잘라 내야 더 잘 산다 - 아이비?English i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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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0-31 13:00 조회7,00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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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라 내야 더 잘 산다 - 아이비?English i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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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그림책은 언제나 인기 만점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보고 식물을 심는 게 일이다 보니, 알맞은 그림책과 식물을 고르는 건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림책은 만나게 될 아이들의 인원과 성별, 나이를 고려해서 정하는데, 무엇보다 제일 먼저 생각하는 부분은 ‘재미’이다. 우선 재미가 있어야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아이에게 읽어 주다보니 경험으로 조금은 알 수 있는데, ‘공룡’이 나오는 그림책은 대개 인기가 많다.
특히 티라노사우루스처럼 인기 스타가 나오면 딴짓하던 아이들도 금세 집중한다. 그래서 나도 티라노사우루스가 나오는 그림책을 잘 읽어 준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시리즈 그림책도 있는데, 그 그림책들은 어느 권을 읽어 주어도 아이들이 좋아한다. 그 시리즈 가운데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읽어 주는 이야기는 티라노사우루스와 함께 익룡 ‘프테라노돈’이 나오는 권이다. 아빠, 엄마, 새끼 프테라노돈, 이렇게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는데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 아빠만큼 커졌다.
어느 날 밤 엄마, 아빠는 새끼가 잠든 사이에 멀리 떠나 버린다. 새끼가 컸으니 이제 독립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엄마는 차마 못 떠나고 눈물을 흘리며 새끼를 걱정하지만,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잘 해낼 거예요.” 결국 아빠의 바람대로 새끼는 스스로 잘 해낸다.
그리고 사나운 티라노사우루스를 만나지만 엄마, 아빠에게 배운 사랑과 지혜로 잘 헤쳐 나간다.
꺾꽂이가 잘 되는 식물
아이비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 빠뜨리지 않고 심는 식물이다. 잎이 예쁘게 생겨서 아이들이 좋아하기도 하고, 생명력이 강한 편이라 좋아한다. 한때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아이비 잎에 독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는 바람에, 그런 식물을 심으면 어떡하느냐고 어머니들로부터 항의를 받은 적도 있지만, 자세히 설명을 하고 안심을 시켜 드렸다.
아이비의 잎에 독성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다른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고, 오히려 그 독성분을 이용해 사람의 병을 고치는 약을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입에 넣으면 안 좋은 것이지 만지는 것만으로는 큰일이 나지 않는다. 이런 오해만 없다면 아이비는 집 안에서 키우기에 정말 좋은 식물이다. 덩굴식물인 아이비는 줄기를 길게 뻗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줄기 마디마다 새로 뿌리를 낸다.
‘공기뿌리’라고도 부르는 이 뿌리는 줄기가 벽 같은 곳에 달라붙을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 늘어진 줄기를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대부분 싫어한다.
어른들은 좀 더 긴 줄기를 가진 아이비를 갖고 싶어 하는데 비해 아이들은 줄기를 잘라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과감하게 가위로 줄기를 싹둑 잘라 주며 말한다. “잘린 아이비 줄기는 죽는 게 아니라 지금 엄마, 아빠에게서 떠나는 거야. 이 줄기에서 새로 뿌리가 생겨나고 여기에 있는 잎들이 또 새로운 엄마, 아빠가 될 거야.” 아이비는 꺾꽂이가 잘 되는 식물이다. 잎이 몇 개 달려 있는 줄기를 흙에 꽂아도 좋고, 물병에 넣어 놓아도 좋다. 심지어 줄기가 아니라 잎에 붙어 있는 잎자루만으로도 새로 뿌리를 낼 수 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어서 번식을 하는 일반적인 식물의 번식 방법과 달리 아이비를 비롯한 여러 식물들은 자신의 몸을 잘라서 새로 새끼를 만들어 낸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잘린 아이비의 줄기며 잎을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모두 집에 가져가서 새로 뿌리를 내리겠다고 한다. 조그만 아이비 잎 끝에 달린 잎자루에서 새로 뿌리가 난 걸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대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저 조그만 잎사귀 속에 ‘생명’이라는 대단한 힘이 들어 있어서 스스로 뿌리를 내고 살아간다는 게 인간의 머리로는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기도 하다.
뿌리를 낼 그 힘을 믿자
그림책에 나온 새끼 프테라노돈은 엄마, 아빠와 헤어졌지만 씩씩하게 자신의 앞길을 개척한다. 어엿한 한 마리 공룡 몫을 하는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에 살았던 공룡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약간은 냉정해 보이는 부모 자식 관계는 동물의 세계에 늘 존재한다.
꽤 오래전부터 쓰이다가 아예 신조어로 자리 잡은 ‘헬리콥터맘’이란 단어가 있다.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며 자녀를 과잉 보호하는 엄마’를 뜻한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은 늘 부족하고 불안해 보이는 존재이다. 그래서 멀리 보내지 못하고 늘 곁에 머물면서 간섭한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같은 동물의 입장에서 프테라노돈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부모 눈에는 한없이 연약해 보이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이비의 잎자루처럼 뿌리를 낼 힘이 넉넉히 있다. 과감하게 잘라야 새로운 뿌리가 돋아날 수 있다고. 지금도 아이비는 내 곁에서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