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어머니의 레시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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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5-27 12:13 조회4,05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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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레시피, 사랑
어머니의 15주기 제사를 모셨다. 가족들로 북적여야 할 집안이 코로나19로 인한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에 썰렁하기 짝이 없다. 근처에 사는 막냇동생 내외와 함께 조촐한 제사상을 차리면서 무지막지한 바이러스를 탓하고 융통성 없는 정책 탓도 해 보았지만,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쉽게 달래지지 않는다. 당신들의 뿌리에서 뻗어 나간 네 남매와 그의 배필들, 그리고 거기에서 열매 맺은 손녀와 손자를 기다리셨을 어머니와 아버지의 실망이 눈에 보이는 듯해서였다.
동생과 올케가 전을 부치는 동안 나는 알 굵은 달래를 다듬고 돼지고기를 다져서 달래장을 끓인다. 아껴두었던 고들빼기김치도 보기에 넉넉하게 담아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우리 집만의 특별식이다. 언젠가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달래장과 고들빼기김치 얘기가 나왔다. 입맛을 다시는 동생들의 절절한 그리움에 마음이 아팠다.
이듬해 봄 성묘 차 가족들이 모이는 한식날, 난생처음 달래장을 끓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달래장이 무어 그리 대단했겠냐만, 아버지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달래장을 맛보게 된 동생들의 환호는 대단했다. 동생들은 어머니와 똑같은 맛이라면서 달래장에 밥도 비벼 먹고 떡도 찍어 먹으며 웃다가 눈물을 글썽이다가 야단법석을 쳤다. 그리고 내게 고들빼기김치도 담가 달라는 주문을 하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누나는 반 부모라며 동생들을 타이르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말씀이 생생하게 들리는 듯해서 달래장도 고들빼기김치도 만들어 주마, 꼭 그러마 약속했다. 나도 동생들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 후로 1년에 두 번, 봄가을이면 편지를 쓰듯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들에게 달래장과 고들빼기김치를 만들어 보낸다. 언 땅이 채 녹기도 전 성급한 새싹이 돋아날 즈음 향긋한 달래장을, 가을걷이가 끝나고 무서리가 내릴 무렵 쌉싸래한 고들빼기김치를 만들고 있노라면 아버지 어머니의 울타리 안에서 구김살 없이 뛰어놀았던 유년 시절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다.
동생들도 달래장을 받을 때마다, 고들빼기김치를 받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한다. 동동거리는 누나의 모습이 눈에 밟혀서 마음이 아프고, 달래장과 고들빼기김치에서 고스란히 묻어나는 어머니의 손맛, 그 순순하면서도 토속적인 감칠맛에 목이 메어서란다.
달래장과 고들빼기김치는 요즘 말로 우리 가족의 소울 푸드(Soul Food)인 셈이다. 층층시하, 늘 군식구가 끓는 가난한 집안의 살림을 꾸려야 했던 어머니가 그나마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나 동생들은 예닐곱 살 어린 시절부터 그 음식을 자주 접했고, 그 맛에 길들었고, 이제 그 맛을 그리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이른 봄이면 어머니는 남보다 먼저 온 동네 밭을 다 누비다시피 하면서 냉이며 달래, 쑥, 씀바귀, 꽃다지, 돌나물을 캐고 산비탈 양지바른 곳을 찾아 얼레지, 두릅, 참나물, 곰취, 다래 순을 뜯어 밥상을 꾸리셨다. 달래장뿐이겠는가. 비록 밀가루에 버무린 것이기는 했어도 쑥개떡도 별미였고, 미나리와 함께 담근 시원한 돌나물 물김치, 구수한 냉이된장국도 참 맛있었다. 커다란 양푼에 온갖 산나물 아낌없이 집어넣고 고추장 한 숟가락, 들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비벼 먹던 감자밥은 아, 지금 생각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가을에는 20~30리(8~12km)쯤 떨어진 먼 곳까지 고들빼기를 캐러 가셨다. 마을 인근에는 호미를 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김장이 겨울 반 양식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송곳 하나 꽂을 만한 땅도 없었던’ 처지에 무시로 들고나는 입까지 많아서 김장김치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지금이야 고들빼기김치를 맛으로 먹는다지만, 어머니에게 고들빼기김치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일종의 비상 김치였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의 달래장도 저비용 고효율의 음식이었던 셈이다. 강원도에는 된장과 고추장의 중간쯤 되는 막장이 있다. 간장을 빼지 않은 메줏가루에 거친 고춧가루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구수하고 칼칼한 맛이 특징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이 막장으로 나물을 무치기도 하고, 된장 대신 넣어 찌개를 끓이거나 여름철 냇가에서 천렵할 때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이기도 한다.
달래장은 뚝배기에 물과 막장을 되직하게 풀어서 끓이다가 달래를 넣어 뭉근하게 끓여야 한다. 쉬운 것 같지만 막장과 물, 달래의 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너무 묽어도, 너무 되직해도, 너무 덜 끓여도, 너무 오래 끓여도 제맛이 나지 않는다. 보글보글 끓는 막장에다가 요즘처럼 시퍼렇고 긴 잎이 아니라, 10cm도 채 되지 않는 어린잎과 둥근 알뿌리를 달고 있는 달래를 듬뿍 넣으면 오래지 않아 뽀얀 김과 함께 피어오르는 그 알싸하면서도 향긋한 냄새라니…. 보리밥에 쓱쓱 비벼 먹어도 좋고, 곰취에 듬뿍 올려 쌈을 싸도 좋은 그 맛….
고들빼기김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 날 며칠씩 소금물에 담가 쓴맛을 빼는 여느 집과 달리 어머니는 씻은 고들빼기를 그대로 버무리셨다. 배추김치를 다 버무리고 남은 양념에 새우젓 한 줌 더하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이었을까. 어머니가 담근 고들빼기김치의 쓴맛은 그저 쓴맛이 아니다. 아련하게 달곰하면서도 시원하고 쌉싸래하다. 따뜻한 밥을 볼이 미어지게 씹으면서, 잘 익은 고들빼기김치를 손가락으로 집어서 한 입 가득 넣어보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처럼 좋은 게 없다던 어머니의 미소가 보일 듯한데….
올해도 어김없이 달래장을 올렸지만, 가족이 반도 넘게 빠진 제사상은 쓸쓸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내년에는 우리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간절한 부탁을 드린다.
수천의 생을 반복한다 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드물다.
그러니 지금 후회 없이 사랑하라.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나아가 가족의 사랑을 귀하게 여기라는 <입보리행론>의 한 구절이, 어머니의 손맛 담긴 달래장과 고들빼기김치를 20년만 더 먹게 해 달라는 동생들의 생떼(!)를 꼭 들어주라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타이름이 되어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