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한글날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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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0-06 15:23 조회4,72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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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에 즈음하여
요즘 TV 홈쇼핑 채널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상품이 마스크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금스크라고 불릴 정도로 구하기 어렵던 마스크가 이제는 기능도, 모양도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그야말로 돈만 있으면 취향에 따라, 용도에 맞게, 수량 제한 없이, 얼마든지 구입이 가능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증을 받았고, 순면 100%의 필터에 특수 원사를 사용해서 숨쉬기 좋을 뿐 아니라, 국내 제작이라 믿을 수 있으며… 등등, 경쟁이 치열한 만큼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쇼핑 호스트’의 달변이 이어지는데, 아뿔싸! 이를 어쩌나. 끈이 ‘얇아서’ 오래 착용해도 귀가 아프지 않다는 말이 신경을 건드린다.
얇다는 건 평면의 두께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둥글게 생긴 끈이니 ‘가늘어서’라고 쓰는 게 맞는 표현이다. 홈쇼핑도 방송인데, 우리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쇼핑 호스트라니. 남들은 별 걸 다 걸고넘어진다고 하겠지만, 그럴 때 나는 그 제품마저 함량 미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쇼핑 호스트라는 말도 그리 탐탁지 않다. 사고파는 사람 사이에 들어 흥정을 붙이는 일을 하는 사람을 일러 거간꾼이나 흥정꾼, 중개인이라고 하지만 그와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하고, 그렇다고 달리 적당한 말이 없으니 그렇게 쓸 수밖에.
방송 진행자가 훌륭한 사람을 모셔놓고 ‘대인배’ 운운하면서 소인배, 불량배, 시정 잡배, 간신배와 동급으로 만들어놓는 일도 허다하다. 대인배는 소인배의 반대말이 아니다. 소인배의 배輩는 부정적인 낱말에만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사람을 대인배라고 칭하는 건 반드시 고쳐야 할 잘못이다.
곤혹스럽기는 코로나19와 관련된 용어도 마찬가지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컨트롤타워(지휘본부)’,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 ‘드라이브스루(차량 이동형)’, ‘코호트 격리(동일 집단 격리)’ ‘진단 키트(진단도구 꾸러미),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증)’, ‘언택트(비대면)’, ‘비말(침방울)’, ‘의사擬似 환자(의심 환자)’ 등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의학용어나 애매모호한 외국어, 어려운 한자어가 그것이다. 우리는 전문 의료인이 아니다. 왜 그렇게 어려워야 하는가. 심각한 상황, 어려운 때일수록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 그게 배려이고, 소통의 지름길이다.
서양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을 당황하게 하는 건 이른 바 칼질을 하는 음식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레어’냐, ‘미디엄’이냐, ‘웰던’이냐를 묻는다. 서양 음식이니까 서양 말로 묻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겉만 살짝 익힐 것인가, 중간 정도로 익힐 것인가, 완전히 익힐 것인가 물으면 왜 안 되는지. 내가 ‘바싹’이라고 말하면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왜 웃는지도 모르겠다. 요리사라고 하면 격이라도 떨어지는 양 ‘셰프’라는 호칭을 쓰는 이들이 예약 부도라는 말 대신 ‘노쇼’를 고집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래 ‘꽤나’ 한다는 사람들은 저마다 ‘18번’ 한두 곡씩 있기 마련이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이크를 놓지 않으려는 공통점이 있다.
“휴전선 달빛 아래 녹슬은 기찻길…” (나훈아/녹슬은 기찻길)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박인희/목로주점)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잊혀진’ 계절)
“창 넓은 찻집에서 다정스런 눈빛으로…” (최성수/해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노사연/만남)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인순이/거위의 꿈)
“이제 그대하고는 두 번 다시 가슴 설레임 없을 줄 알았었는데…” (뱅크/후회)
노래 ‘깨나’ 한다고 ‘애창곡’을 부르며 으스대지만 우리말 맞춤법으로 보자면 ‘녹슨’, ‘멋들어진’, ‘잊힌’, ‘다정스러운’, ‘바람’, ‘날 수’, ‘설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으니 땡! 탈락이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난다, 부모님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쌍둥이지만 성격이 ‘틀리다’라는 말은 ‘정말’ 기뻐서, 부모님 ‘덕분에’, 성격이 ‘다르다’라고 해야 한다. “진료실로 들어오실게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같은 이상야릇한 존대는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쓰는 게 맞다.
우리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낮추어 부르는 지나친 겸손은 이제 그만! 우리나라는 세계 그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동등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우리 고유의 명절 설날을 일제의 잔재인 ‘구정’이라고 부르는 한심한 작태도 끝내야 한다. 구정은 버려야 할 구습이라며 일제가 붙인 이름으로, 85년 만인 1989년에 이르러서야 ‘설날’이라는 고유의 명칭을 되찾았다. 이참에 하나 더, ‘한일합방’도 일제를 옹호하는 말인 만큼 경술국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