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산삼 도둑의 용서와 보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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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7-07 13:57 조회2,42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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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기를 한참이나 넘긴 딸을 둔 박 씨 성을 가진 나무꾼이 있었다. 금년에는 어떻게 하더라도 시집을 꼭 보내려 했는데 또 한 해가 속절없이 흘러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니 박 씨는 늘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딸의 혼기를 놓친 것은 따지고 보면 딸의 탓이 아니라 가난 탓이었다. 일 년 열두 달 명절이나 폭우가 쏟아지는 날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웠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법 없어도 살아갈 착한 박 씨는 한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나무 장사뿐인데 요즘은 몸도 젊은 시절 같지 않아서 나뭇짐 뭉치도 점점 작아져서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지게에 도끼와 톱을 얹고 화력 좋은 굴참나무를 찾아 헤매던 박 씨는 힘이 들어 쉬고 있었다. 이때 새하얀 눈 위로 새빨간 산삼 열매가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아닌가? 박 씨는 기쁨에 겨워 산삼을 캐보니 무려 120년이나 된 동자삼이었다. 박 씨가 120년이나 된 산삼 한 뿌리를 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자 저잣거리의 약재상이 찾아왔다.
“박 씨 산삼을 들고 주막으로 가세. 천석꾼 부자 황 참봉이 기다리고 있네.”
박 씨는 이끼로 싼 산삼을 보자기에 싸서 약재상을 따라 저잣거리 주막으로 갔다. 황 참봉과 그의 수하들이 술상을 차려놓고 박 씨를 기다리고 주막 주변에는 온갖 사람들이 산삼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박 씨가 보자기를 풀자 120년생 동자 산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탄성을 지를 때 누군가 번개처럼 산삼을 낚아채더니, 120년 묵은 동자삼을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어 대는 것이 아닌가? 주막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황 참봉의 수하들이 산삼 도둑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려보니, 폐병으로 콜록콜록하는 노름꾼 허골이었다. 제대로 놀음판에 끼지도 못하고 뒷전에서 술심부름이나 하고 고리나 뜯는 집도 절도 없는 젊은 놈팡이 허골은 맞아서 코피가 터지고 입술은 당나발처럼 부어오른 채 황 참봉 수하들에 의해 방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이놈을 포박해서 우리 집으로 끌고 가렸다. 이놈의 배를 갈라 산삼을 끄집어낼 테다.”
황 참봉의 일갈에 허골은 사색이 되었다. 바로 그때 박 씨가 나섰다.
“참봉어른, 아직까지 허골의 배 속에 있는 그 산삼은 저의 것 입니다. 이놈의 배를 째든지 통째로 삶든지 제가 데려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박 씨의 말이 맞아 황 참봉은 할 말이 없었다. 박 씨는 허골을 데리고 나와 언덕마루에서 그를 풀어주었다.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 씨는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며 크게 한숨을 토했다.
“그걸 팔아 딸애 시집보내려 했는데, 배를 짼들 산삼이 멀쩡할까. 내 팔자에 무슨 그런 복이….”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 예나 다름없이 박 씨가 나뭇짐을 지고 산에서 내려와 집 마당으로 들어오는데 갓을 쓰고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이가 넙죽 절을 하는 게 아닌가.
“소인 허골입니다.”
피골이 상접했던 그 모습은 어디 간데없고 얼굴에 살이 오르고 어깨가 떡 벌어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허골은 산삼을 먹고 폐병이 완치돼 마포 나루터에 진을 치고 장사판에 뛰어들어 거상이 되었던 것이다.
꽃 피고 새우는 화창한 봄날, 허골과 박 씨 딸이 혼례를 올렸다. 박 씨는 더이상 나무지게를 지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저잣거리 대궐 같은 기와집에 하인을 거느리며 살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서로 용서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품고 살면 언젠가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 하늘의 섭리인가 봅니다. 요즘처럼 바쁘게 앞만 보며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고요의 시간으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음미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베푸는 시간도 가져보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을 때 친구를 위해 단문이나마 격려하는 편지를 보내보는 것도 사람의 향기가 나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