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마음으로 짓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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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7-07 12:59 조회2,79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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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는 산골,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초보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집을 지어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길을 나섰다.
벽에 구멍이 뚫리고, 지붕 한 쪽이 내려앉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폐가나 다름없었던 그녀의 낡고 초라한 집. 문짝이 떨어져 나간 부엌, 디딜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마루, 온 집안을 굴뚝으로 만드는 아궁이, 눅눅한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 멀찌감치 떨어진 것도 모자라서 등겨로 뒤처리까지 해야 하는 재래식 뒷간(화장실 절대 아님),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어른 팔뚝만한 쥐…. 전설의 고향에나 나옴직한 그녀의 보금자리가 내내 마음에 걸렸던 터라 그녀의 집들이 초대가 더없이 반가웠기 때문이다.
나는 2년 남짓 그녀가 살았던 그 집이 참 싫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버리고 귀촌을 감행했던 그녀에게는 ‘비빌 언덕’이자 둘도 없는 삶의 터전이었을지 몰라도, 서너 차례 그곳을 찾았던 내게는 불안하고 을씨년스러운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곳은 귀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자, 그런 곳에서도 행복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진심을 의심하게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월간지 편집장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던 커리어 우먼이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조짐조차 없이 그 빛나던 모든 것을 단칼에 잘라버리고 낙향을 감행한다? 능력 만큼 세련되고, 오만하리만큼 당당한 그녀의 탈 서울은 궤도 수정이 아니라 궤도 이탈에 가까웠다. 나처럼 제법 가까운 축에 드는 사람들조차 그녀로부터 “나 직장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갈까 해”가 아니라 “시골로 내려왔어”라는 통보를 받아야 했으니 번갯불에 콩 볶는 그녀의 행보를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할 수밖에.
어쨌든 그녀는 무주 산골로 들어갔다. 이사 소식과 함께 바람이나 쐬고 가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어찌나 밝고 힘차던지 술과 고기, 인스턴트 일습인 도시의 것들을 챙겨 그녀에게로 가는 길이 즐겁기만 했는데 어이구, 이게 웬일? 갑작스럽게, 무작정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의 집은 그렇게 궁상맞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가끔이지만 그곳을 찾을 때마다 은근슬쩍 도시로 귀환할 것을 종용하는 내게 그녀는 투명한 햇살과 밤하늘에 총총한 별, 맑고 깨끗한 바람,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노래하는 새, 안온한 숲과 욕심 없는 사람들이 좋다고 했다. 사과밭에서 꽃을 솎거나 손톱만 한 열매에 봉지를 씌우면서 느끼는 생명의 경이로움이며, 논과 밭에서 땀 흘리면서 온몸으로 깨우치는 노동의 소중함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느냐며 그녀는 가난하지만 충만한 농부의 삶을 더없이 만족스러워했다.
그녀가 새로 지어 이사를 한 집은 풀이 무성한 임도를 따라 30여 분을 더 올라가야 하는 외진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급한 경사에 길이 얼마나 험한지 걸어서는 두어 시간이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차도 없이, 어쩌자고 이 깊은 산중에 집을 지었는지…, 기막혀 하는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이곳 저곳을 손가락질하며 이건 무슨 꽃, 저건 무슨 나무 하면서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귀촌 한 사람들끼리 십시일반, 품앗이로 지었다는 말 때문에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그녀의 집은 예상과 달리 아담하고 예뻤다. 뒤로는 아름드리 소나무 서너 그루가 호위하듯 서 있고, 진흙으로 만든 벽돌에 기와를 얹은 지붕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산중이라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더니, 마당 한쪽으로는 태양열 집열판도 세워져 있었다.
전통적인 한옥 짓는 방법대로 지은 집이라고 했다. 한옥학교에서 정식으로 한옥 짓는 방법을 배운 이웃사람의 진두지휘에 따라 그의 동기생들이 자원봉사로 품을 보태고, 그녀와 그녀의 이웃들이 벽돌을 찍고 나무를 다듬어 만들었다는 그녀의 집은 투박하면서도 아늑했다.
놀라운 것은 구부러진 나무를 그대로 얹은 대들보에 쓰인 ‘흙'처럼 물처럼, 좋은 벗 더불어 가슴 열고 마음 씻고’라는 글귀가 말해주듯 자연을 최대한 살린 집안 풍경이었다. 옹이구멍이 듬성듬성한 마루, 거칠게 바른 흙벽,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 만든 선반, 문창호지에 야생화로 운치를 더한 창문(옛집에서 떼어왔다는 방문을 가로로 붙여서 만든), 천연염료로 멋을 낸 광목 커튼, 그녀가 인근 도자기 가마에서 직접 빚었다는 질박한 옹기그릇….
더 놀라운 것은 집터를 뺀 나머지 대부분이 십시일반, 이웃사람들의 땀으로 만들어지고 모아졌다는 사실이었다. 대나무 봉에 꿰어진 광목 커튼도, 고목 뿌리를 다듬어 만든 탁자도, 심지어 외딴 집을 지키는 똥강아지까지도 모두 다 이웃사람들의 온기가 배인 것들이었다.
뻐꾸기 울음 속에 깊어가는 봄밤, 그녀는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가죽나물로 전을 부치고 해묵은 머루주 항아리를 개봉했다.
왜 하필이면 투자 가치조차 없는 이 깊은 산중에 자리를 잡았느냐며, 이 외딴곳에서 무섭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발그레하게 물든 얼굴로 그녀가 대답했다.
불편한 거 많지.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도도 없고 휴대폰도 제대로 안 터지고. 맨몸으로도 오르내리기 힘든 산길을 거의 매일, 그것도 뭐든 들고 메고 지고 낑낑~ 그런데 참 이상하지? 그게 불편하지가 않은 거야. 산뜻하다고 할까? 후련함이나 성취감 같은 거 있잖아. 마치 한 그루의 나무가 된 것처럼,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게 온몸으로 느껴져. 거기다가 이렇게 내 한 몸 누이고도 남을 멋진 집까지 있는데 뭘 더 바라겠어?
혼자 지은 집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서 괜찮다고, 산과 하늘이 감싸 주고 바람이 동무해 줘서 든든하다고, 부족한 것보다 감사할 일이 더 많아서 행복하다고.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가 내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보다 더 많은 것을 가졌다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산다고,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나의 오만을 위로하듯 그녀가 ‘인간의 욕망은 모두가 덧없어서 마치 물거품 같고 허깨비 같으며 야생마 같고 물속에 비친 달 같으며 뜬구름 같다’라는 『화엄경』 한 구절을 슬며시 짚어 주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불법과 권모술수의 격랑 속으로 몸을 던지는 고해 중생은 되고 싶지 않단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어리석음도 사양하겠단다. 그녀의 인생을 꽃피우는 쉼터이자 이웃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공간, 작지만 좁지 않았고 질박하지만 빛이 나는 그녀의 집에서 노동이 즐거움이 되는 참 행복한 집 짓기의 기적을 보았다면 지나친 과장이 될까. 행복한 집 짓기를 위해서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며 그녀는 지금도 그곳, 무주 산골에서 집짓기 울력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