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참회懺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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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8-01 15:28 조회2,519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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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중요성
참회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잘못을 반설하고 후회하며 상대방이나 대중들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15권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참懺’과 ‘회悔’는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참懺’은 용서를 비는 것이고, ‘회悔’는 스스로 죄를 고하는 것이다.
또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懺’이라 함은 지난날 지은 죄업, 어리석음, 거만함, 질투 등 죄업의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것이고,
‘회悔’는 모든 악업, 어리석음, 거만함, 질투 등 앞으로의 잘못을 절대 짓지 않을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들을 통해서 보면 참회는 무엇보다도 남에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으로 지난 잘못을 고치고 앞으로는 잘 행하겠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경전에 의하면, 우리 범부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잘한 것 보다는 잘못한 것이 많기 마련인데, 심지어는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는 데 있어서 죄업이 아닌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죄업은 마치 검은 구름이 태양을 가리듯 우리들의 불성을 가로막아 우리로 하여금 생사의 바다에서 떠돌며 윤회를 멈추지않게 합니다.
그래서 〈화엄경보현행원품〉에서도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내가 과거의 끝없는 세월에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었던 탓으로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이 한량없고 끝이 없으니, 만일 그 나쁜 업이 어떤 형체가 남아 있다면 가없는 허공으로도 그것을 다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순간순간 끊임없이 악업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에서는 죄 짓는 것도 두려워해야 하지만 참회하지 않는 것을 더욱 두려워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극한 참회는 죄업을 소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옷이 더러워져서 빨면 새 옷같이 깨끗해지고, 논의 벼가 튼튼하게 자랐다면 설사 잡초가 다소 있더라도 별로 상관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 물 한 컵에 소금 한 주먹을 집어넣으면 물맛이 짜기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물을 더 많이 섞으면 짠맛은 옅어질 것입니다. 참회는 깨끗한 물과 같아서 우리들의 죄업을 씻어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참회하고 또 참회하는 것입니다.
또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습니다. 돌덩이 하나를 그대로 물에 던지면 가라앉지만 배위에 올려놓으면 배의 부력 때문에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습니다. 참회는 나룻배와도 같아 우리들을 해탈의 열반으로 실어다 줍니다.
또 참회는 약초와도 같아 우리들의 번뇌 병을 치료해 주며 참회는 밝은 불빛과도 같아 우리들의 컴컴한 무명을 비추어 주고 참회는 성벽과도 같아 우리들의 몸과 마음 육근을 보호하여 줍니다. 참회는 계단을 오를 때 잡고 올라가는 난간처럼 우리들이 성불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며 참회는 장신구와도 같아 우리들의 보리과를 장엄하여 줍니다.
잘못을 했더라도 진실로 참회할 줄 알면 아무리 무거운 죄업도 소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백정이 칼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성불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참회하는 것은 한없이 수승한 공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반경》에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쁜 일을 했더라도 뒤에 드러내어 곧 참회하고 다시 짓지 말아야 한다. 흐린 물에 밝은 구슬을 두면 구슬의 위력으로 물이 곧 맑아지고, 연기와 구름이 없어지면 달이 곧 밝아지는 것이니, 악을 짓고 참회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불교의 많은 법문 가운데에서 참회는 필수적인 수행의 덕목입니다. 초기불교의 교단에서는 모두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기 위하여 자자自姿와 포살布薩이라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자자라는 것은 안거가 끝난 뒤 수행승들이 서로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대중의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었습니다. 또 포살 이라는 것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 두 번씩 대중들이 모여 자기의 행위에 잘못이 없었는가를 대중들에게 물어보고 참회를 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이 의식에 참여하여 혹시나 당신의 잘못이 없는가를 제자들에게 물어보고 지적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보름날 밤에 포살 의식이 행해졌는데 500명이나 되는 비구들이 차례대로 나와서 자신에게 잘못이 없는 지를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500명이나 되는 비구들이 차례로 나와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달라고 했으나 모두가 침묵했습니다. 포살 의식에서는 침묵이 곧 긍정의 대답이었습니다. 500명의 비구가 그 누구도 허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께서도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하셨는데 역시 대중들은 침묵했습니다. 이 장엄한 광경을 보던 한 비구가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일어서서 시로써 이 장면을 찬탄한 것이 《아함경》에 실려 있습니다.
우리나라 승가에서도 포살과 자자가 아직도 잘 행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부처님 시대에도 이렇게 잘못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의식이 행해졌던 것을 보면 참회가 불교수행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참회문을 입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매번 마음을 다해서 잘못을 참회하고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