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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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1년, 36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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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1-14 15:56 조회3,57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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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찍 잠이 깼다. 여느 때와 달리 창밖이 유난히 훤해서 내다보니 하늘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다. 해가 막 떠오를 무렵 하늘이 품고 있는 빛깔이다. 얼른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 보니 해 뜨는 시간 7분 전. 마치 오래전부터 작정이라도 했던 것처럼 해돋이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서둘러서 바닷가로 차를 달리면서 해야, 1분만 늦게 떠라, 주문을 외운다.

 

바닷가 아무 곳에나 차를 세운다. 하늘빛은 더욱 붉어지고 바다도 검푸른 파도에 붉은 물감을 풀고 있다. 내 가슴에도 따뜻한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드디어 수평선이 열리고, 거친 파도를 헤치며 붉은 해가 떠오른다. 희뿌연 어둠을 밀어내며 눈부신 햇살이 온 누리를 밝힌다.

 

또다시 아침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새 날, 새 아침.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고, 겸허한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는 이 시간은 해돋이가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해넘이의 아름다움이 주는 감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해넘이는 온유하고 감성적이다.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하루, 한 생을 마감하는 노을은 깊고도 그윽한 여운으로 가슴을 적신다. 소명을 다하고 미련 없이 스러지는 빛, 긴 어둠 속에서 또 다른 아침을 준비하는 적멸寂滅의 시작은 그래서 또 아름답다.

 

, 여기서 찬물을 한번 끼얹어 보자. 이름하여 낭만에 초 치는 소리가 되겠다. 해돋이는 해의 윗부분이 수평선에 접하면서 마침내 수평선 위로 둥실 떠오르는 순간을 가리키는 기상용어다. 반대로 해넘이는 해의 아랫부분이 수평선에 닿는 순간부터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를 말한다. 과학적으로는 해돋이나 해넘이의 개념이 따로 없다고 하는데, 그 까닭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자전하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 해의 마지막 날 해넘이를 보기 위해, 또는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산과 바다로 향한다. 지는 해든 뜨는 해든 이날, 이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해는 어제의 해가 아니다. 이 시간만큼은 지난 한 해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좋다. 이 시간만큼은 마음 가득 새로운 소망과 다짐을 품어도 좋다. 마음속 묵은 때가 씻겨 나가고 기원한 대로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것 같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들이 강추위를 마다하지 않고, 밀리는 길조차 기꺼이 감수하면서 해넘이와 해돋이 명소로 몰려드는 것이겠지만.

, 이런! 이렇게 미련할 수가! 오늘 아침에야 깨닫게 되다니. 남들이 그리도 부러워하는 해돋이의 명소 동해를 앞마당처럼 지척에 두고도 1, 365일이나 되는 그 많은 날 중 해돋이를 보러 나온 날이 새해 첫날 단 하루뿐이었다니. 나 자신의 무심함과 게으름이 놀라울 지경이다.

 

예정에도 없던 해돋이를 보면서 느낀 건 평범한 날 마주한 해돋이의 감동도 새해 첫날, 첫해의 그것 못지않게 감동적이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꽃이 수없이 많이 피어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눈길조차 주지도 않았으면서 무엇을 보았다고, 무엇을 느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해넘이도 마찬가지다. 우리 동네는 해가 정동진 쪽에서 떠서 대관령 쪽으로 진다. 서해안처럼 이름난 해넘이 명소는 아니지만 저녁나절이면 대관령 쪽 하늘이 벌겋게 물들면서 해와 구름이 빚어내는 빛의 향연이 퍽 아름답다. 그러나 그 또한 어쩌다, 가끔 한 번씩 보게 된다. 그것도 오다가다 우연일 때가 많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저 먼 서해 왜목마을까지 달려가 해넘이에 실어 보냈던 감사와 위로를 또 그렇게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해넘이가 가는 해의 마지막 날에만 일어나는 자연현상이 아닌 것처럼 해돋이 역시 새해 첫날에만 생기는 자연현상이 아닌 것을. 해넘이가 그러하듯 해돋이 역시 1365일 중 나머지 364일에도 꾸준히 되풀이되고 있었을 터.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해는 맑은 날은 물론이려니와 구름 저 너머에서도, 비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어김없이 뜨고 지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그리 춥지 않으니, 그리 서두르지 않아도 좋으니, 갈매기 발자국을 따라 천천히 모래사장을 걷는다. 온 사위를 물들였던 붉은빛이 걷히고 제 빛으로 빛나는 하늘과 바다의 순응, 거기에 쉼표를 찍듯 오가는 배의 여유로움 때문인가. 문득 해넘이나 해돋이 하루에만 열광하느라 1년을 꽉 채우고 있는 나머지 364일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친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빛나는 스타 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 무대 아래서 땀 흘리는 수많은 이들의 수고를 무시한 것 같은 민망함, 웅장한 건물의 위용에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것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이나 기둥의 존재를 헤아려 본 적조차 없는 데서 오는 계면쩍음 같은.

 

그 하루의 수많은 다짐처럼 매일 새로운 각오로 364일을 보낼 수 있다면, 아마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염원이 꽃처럼 피어나 세상은 배려와 감사로 넘치고, 저마다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 알찬 결실이 되어 훨씬 더 풍요로울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열 번 스무 번 반성과 다짐을 하고 계획을 세워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도 않은 것이니 중요한 것은 현재를 열심히 사는 것이다.”라는 중부경전의 말씀이 달리 있겠는가.

 

또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코로나19로 해넘이해돋이 행사가 대폭 축소되었다고는 하지만 가는 해의 마지막 날, 마지막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 첫날의 첫해를 맞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의 해넘이해돋이 명소를 찾아 새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부디 그 하루의 감동이 나머지 364일의 해넘이와 해돋이로도 쭉 이어질 수 있기를.

 

오늘도 해가 뜨고 해가 진다. 언제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 86,400,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가 새로운 출발이고 영원한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