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자식의 거울,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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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4-28 11:23 조회2,49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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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살쯤 된 남자아이가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음식점 안을 휘젓는 것도 모자라 급기야 식탁 위에 올라가 괴성을 지르며 뛰어내리기를 반복한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영화 스파이더 맨 흉내를 내는 모양이었다. 세 살 때는 뽀로로, 네 살 때는 로보카 폴리, 다섯 살 때는 헬로 카봇, 여섯 살 때는 스파이더 맨이 남자아이의 진리라던가.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영화 속의 스파이더 맨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거미줄을 쏘아대듯 종횡무진, 사방팔방으로 휙휙 던지는 동그란 카드를 주워서 아이 손에 쥐여 주느라 바쁘고, 동석한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손뼉까지 쳐가며 아이의 용감무쌍함을 응원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손님들의 매운 눈총도, 대놓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아랑곳하지않는 그들 가족의 행동에 입맛이 달아날 지경인데 아뿔싸! 아이가 날린 카드가 우리 식탁으로 날아왔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전골냄비에 기세 좋게 날아와 꽂힌 그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황급히 쫓아온 아이의 엄마의 손에 들려있는 젓가락이었다. 자기가 먹던 젓가락으로 ‘귀한 아드님의 소중한 카드’를 꺼내 가겠다는 것이었으니, 미안한 기색도 없이 일언반구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 팔을 뻗는 그녀를 어떻게 참아 준단 말인가. 그런 그녀를 제지하며 이럴 땐 양해를 구하는 게 먼저다, 아이를 자리에 앉혀라, 남들한테도 예쁜아이가 진짜 예쁜 아이가 아니겠느냐, 기어코 일침을 놓았다.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낚아채듯 카드를 받아든 그녀가 아이를 거칠게 잡아끌면서 음식점 안이 떠나가라 아이를 닦달한다.
“앉아! 저 아줌마가 뛰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잖아!”
이에 질세라 아이가 음식점 바닥에 나뒹굴며 울음을 터뜨린다. 아빠는 보란 듯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내렸다 하며 조용히 하라고 으름장을 놓고, 할머니는 아이를 달래느라 야단법석이고, 할아버지는 아이 기죽이지 말라고 고래고래 언성을 높인다. 오오, 이런! 이게 아닌데.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구나. 3대 일가족 다섯 명의 모양새를 보면서 아, 이 집에 꼭 필요한 건 성능 좋은 정수기겠다는 생각에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윗물은 흐려도 아랫물은 맑기를 바라는 내 마음을 그들이 알 리… 절대 없을 것 같아서다.
이렇게 아이를 높이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우리 집 사정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집에도 수십 대의 자동차와 수십 마리의 공룡과 수십 개의 캐릭터 인형을 갖고도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권력자가 군림하고, 그 녀석이 원한다면 무엇이든 OK! 아이를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쏟아 붓는 무한 헌신의 아이콘이 존재한다.
그 때문에 네 돌을 넘긴 손자는 나와 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동차 하면 버스, 택시, 트럭, 경찰차, 기차 정도가 전부인 내가 꼬마 버스 타요나 로보카 폴리에 등장하는 수십 가지 자동차를 어찌 다 안단 말인가. 뽀로로야 알지만 크롱, 패티, 루피, 에디,포비까지 기억하는 건 무리다. 공룡의 종류는 왜 또 그렇게 많은지. 방안 가득 차고 넘치는 장난감 속에서 손자가 원하는 걸 척척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게다가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모든 걸 척척 받아주는 제 부모와 달리 여차하면 야단도 치고 제동도 거는 할머니가 그리 달가울 리 없으니.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지만, 손자가 이 어마어마한 재력(!)을 지니게 된 까닭은 친구들과의 소통 때문이란다. 그때그때 유행하는 캐릭터 장난감을 갖지 못하면 친구들 사이에 끼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같은 캐릭터 장난감이라도 누가 더 크고 멋진 걸 가졌느냐에 따라 아이의 격도 달라진단다. 장난감 하나로 아이를 바보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는데 그 하나에 줄줄이 달려 나오는 것들이 보통 열 개 전후, 많게는 70여 개에 이르는 것도 있다지만 내게는 과유불급, 풍요 속의 빈곤처럼만 보인다.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도, 아니, 장난감 없이도 함께 어울려 뒹굴고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을 이렇듯 줄 세우고 편 가르는 게 부모들인 것 같아서다.
이게 단지 몇몇 사람들의 일이 아니니 더 걱정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해주는 부모, 지나친 간섭과 과잉보호를 사랑이라 여기는 부모, 잘못된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무조건 아이의 역성을 드는 부모, 자식의 성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부모,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앞도 뒤도 보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 오죽하면 도올 김용옥 선생이 ‘요즘 엄마들의 절반 이상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낫다’라는 말까지 했을까.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도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나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모의 그릇된 사랑이 아이들의 인성을, 아이들의 미래를,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아이들이 만들어갈 세상을 얼마나 암울하게 하는가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라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말馬이 있다. 첫 번째 말은 사람이 그 등에 올라타고 가려는 마음을 먹기만 해도 벌써 기운 좋게 달리며, 두 번째 말은 기수가 채찍만 들어도 벌써 알아차리고 달리며, 세 번째 말은 채찍으로 한 번 때린 뒤에라야 비로소 달리며, 네 번째 말은 채찍으로 아무리 엉덩이를 때려도 꼼짝도 않는다. 사람도 이와 같다.
이렇듯 『비유경』에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답, 부모가 아이의 거울임을 깨우쳐 주는 말씁이 더욱 간곡하다. 엄하되 강압적이지 않고, 따뜻하되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 해결사가 아닌 조언자나 조력자가 돼 주는 일, 성공의 단맛에 연연하지 않고 실패의 쓴맛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격려하는 일, 소중함과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내와 절제를 가르치는 일, 진실한 사랑으로 더불어 사는 삶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갈 수 있게 하는 일-이 모두가 부모가 갖추어야 할 미덕이자 의무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부모의 울타리가 아이의 시야를 막는 장벽이 될 수도 있다. 좋은 환경, 과잉보호 속에서 별다른 노력도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은 아이가 일상의 소중함이나 보람을 알 리 없고, 언제나 주인공이 되어 편하고 쉬운 길만 걷고 있으니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하거나 배려하는 일도 먼 나라 이야기다. 네 번째 말의 비애처럼 몸은 쑥쑥 자라지만 마음은 항상 제자리를 맴도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휘몰아치는 비와 바람을 맞아야 튼실한 나무가 되는 것처럼, 혹독한 단련이 준마駿馬를 길러내는 것처럼 아이도 비와 바람을 맞으며 시련을 겪어야 몸과 마음이 단단해진다. 그래서 부모는 사랑하는 마음 이상으로 엄해야 하고,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강직함도 가져야 한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온 누리에 가득한 세상이 곧 우리 모두에게도 행복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