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보시布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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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11-29 14:43 조회2,40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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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륜청정과 무주상보시
보시는 베푸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진정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대승불교의 수행인 육바라밀의 하나로써 대승불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 중의 하나이다. 육바라밀 가운데에서 보시를 가장 첫머리에 놓는 것은 보시가 가장 쉽고도 또한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고 많이 배운 사람이 적게 배운 사람에게 가르침을 베풀어 주는 것이 보시이다. 반드시 재물이 있어야만 보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이 넉넉한 자가 인색한 자에게 베풀어 주는 것도 보시이다. 말하자면 무엇이든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에게 베풀어 주는 것이 보시이다.
보시는 과거로부터 공덕을 쌓는 것으로 여겨지는 인류 공통의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종교이든 선행의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보시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종교에서는 보시를 가장하여 신도들을 착취하는 경우도 있다. 불교에서는 보시를 그냥 베푸는 정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는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아 보시바라밀이라 한다.
바라밀이라는 것은 완성한다는 뜻이 있다. 그래서 보시바라밀이라 하면 보시의 완성, 혹은 완벽한 보시를 의미한다. 그러면 완벽한 보시를 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반야라는 큰 지혜에 의하여 하는 보시로써 나와 남이라는 분별을 초월한 보시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보시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듯이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가를 바라지않고 베풀어 주는 그러한 보시이다.
사람들은 보시를 한다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예를 들면, 선물을 생각해 보자. 내가 누구에게 선물할 때에는 그냥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 선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물을 한 다음에는 은근히 보상을 기대하는 것도 대부분의 사람의 마음이다. ‘내가 이런 선물을 주었으니까 다음번에는 저 사람도 나에게 이 정도의 선물은 해 주겠지’ 혹은 ‘내가 이런 선물을 해 줬으니까 저 사람은 내 말을 잘 들어줄 거야’ 등등 많은 생각이 개입된다. 보시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내가 누구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베푸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보시를 하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어간다. ‘내가 이렇게 보시를 했으니까 뭔가 공덕이 있을 거야’, ‘이렇게 많은 보시를 했으니 복도 많이 받게 될 거야’ 라든지 혹은 무의식중에서도 보시를 받는 대상에게 ‘내가 너보다 모든 게 나아’라는 우월감이 작용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보시를 하면서도 은근히 공덕을 기대한다거나 보시를 받는 대상에게 우월의식을 가지고서 하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가 될 수 없다. 또한 보시하는 물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것이 많다. 그저 내가 쓰지 않는 것이어서 걸리적거리니 누구에게 떠맡기듯이 주면서 그것을 보시라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훔쳐 온 물건을 주면서 생색을 낸다든지 하는 것은 진정한 보시가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보시라는 것을 하면서도 그것이 정말 순수하게 베풀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래서는 참된 보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보시에는 보시하는 사람, 보시를 받는 이, 그리고 보시하는 물건의 3가지가 있는데 불교에서는 이를 삼륜상三輪相이라고 한다. 이 삼륜의 상을 마음에 두는 것을 유상보시有相布施라고 하는데 우월감에서 보시를 한다거나 보시를 하면서 받는 사람을 업신여기거나 혹은 부정하게 취득한 물건으로 보시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바르지 못한 모습으로의 유상보시가 된다. 그래서 보시하는 사람, 보시를 받는 대상, 보시하는 물건 모두가 순수하고 정당해야 한다.
『심지관경』에서는 주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물건의 3가지가 청정하여 공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삼륜청정三輪淸淨이라고 한다. 주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불순한 생각이 개입하거나 주는 대상물이 순수하지 못하면 청정한 보시라고 할 수 없다.
너와 나의 구분이 없이 나의 노력으로 정당하게 취득한 것을 나보다 부족한 사람들을 위하여 베풀면서 여기에 어떠한 불순한, 그리고 차별적인 생각이 개입하지 않는 것이 바로 무주상보시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자비스러운 마음으로 온전하게 베푸는 것이 곧 무주상보시이다.
무주상보시를 하려면 반야의 지혜에 의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보시는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참된 보시를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쉽고도 어려운 것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러한 보시의 완성을 보시바라밀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