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더불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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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5-31 14:35 조회2,35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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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전세 사기 피해로 나라 안이 어지럽다. 전 재산을 잃고 피눈물을 쏟는 피해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최근 한 달 사이에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피해 금액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놓고도 정쟁으로 치닫는 정치권의 목소리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생존을 위협받게 된 이들의 눈물을 닦아 줄 정책을 마련하고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데 더 많은 공을 들이는 것 같으니 말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치에 기대고 정치인에게 매달려본 힘없는 사람들은 안다. 막다른 골목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열에 일고여덟 공허한 메아리, 희망 고문에 지나지 않았음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는 산불도 많았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올 1월 1일부터 4월 28일까지 전국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총 476건, 소실된 면적은 4,643.46㏊나 된다. 지난 한 해 동안 발생한 756건의 50%를 훌쩍 넘어서는 역대 최대 수치이다. 합천 산불에 이어 지난 4월 4일에는 충남 홍성, 대전-금산, 전남 함평, 순천에서, 그리고 11일에는 강릉에서 또다시 산불 소방 대응 3단계가 발령되는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잿더미, 그 절망의 끝에 희망이라는 꽃이 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달려와 자칫 사상 초유의 대형 산불로 확산될 수 있는 불길을 막아낸 소방관들의 사투가, 시시각각 안타까움으로 빠른 진화를 염원했던 많은 이들의 기도가, 현장을 찾아 복구작업에 힘을 보태는 자원봉사자들의 땀방울이, 각계각층에서 보내오는 성금과 성품에 담긴 온정의 손길이 만들어내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기적, 그것이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와 힘이 되어 주었다.
정부의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산불 피해 지역은 각종 피해복구비의 50%를 국비로 지원받는 등 응급 대책 및 재해 구호와 복구에 필요한 행정, 재정, 금융, 세제 등의 특별 지원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구제보다는 예방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 속에 차일피일 지지부진했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으로 2년 한시 특별법도 발표됐다. 이 특별법은 전세 사기를 당해 살던 집이 경매 중이거나 내쫓길 위험에 처한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산불로 집을 잃었든, 전세 사기를 당해 거리로 내쫓기게 되었든 피해자들에게 주어진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다. 결국 고통은 그들의 몫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또 어느 별의 이야기인가. 행정부 정무직(장ㆍ차관급) 및 1급 공무원, 국립대학 총장 및 시ㆍ도 교육감, 공직유관단체장,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 광역의회 의원 등 고위 공직자 2,037명의 평균 재산이 20억 원에 육박한단다. 20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은 31.3%. 전체 신고자 중 73.6%가 재산이 늘어났는데, 평균 증가액이 2,981만 원이고 절반은 1억 이상이라고 한다. 대다수가 공시가격 증가분을 올리기 때문에 실제 재산 규모는 신고 금액보다 클 것이라고 한다. 국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500억 원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4명을 제외한 296명의 평균 재산도 25억 원을 넘었으며 그중 258명(87.2%) 역시 1년 전보다 재산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결이 어쩌면 이리도 다르고, 그 거리는 어쩌면 이리도 멀고 아득한지. 전세 사기로, 산불 피해로, 또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해 삶과 죽음을 오가는 깊고 어두운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소시민들로서는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못 꿀 일이다. 이미 어마어마한 재력을 쌓았으되 그것을 지키고 불리는 재주 또한 비상한 사람들에게 소시민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통렬하게 함께 울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단지 나처럼 우매한 몇몇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문득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피땀으로 평생을 모은 전재산을 희사하는 소시민들은 많지만 수십 수백억 재산을 갖고도 그 일부나마 선뜻 쾌척하는 ‘국민의 심부름꾼’은 왜 그리도 찾아보기 힘든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그들에게 변명거리가 없을리 없다. 공직선거법에서 정치인의 기부 행위를 금하기 때문이란다. 공직선거법에서도 통상적인 정당 활동과 관련한 행위, 의례적인 행위, 구호적·자선적 행위, 직무상의 행위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정치인의 기부 행위를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데 말이다. 방패막이용 아전인수我田引水가 아니라면 기부 행위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감쪽같이 감행하면 될 텐데.
굽은 지팡이는 그림자도 굽어 비친다고 했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것도 그 때문이다. 책임과 의무는 뒷전이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의 상처와 고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람,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제 주머니 불리기에 급급한 사람, 안하무인 기고만장 부른 배 두드리며 매화타령에 하루해가 짧은 사람…. 한 술더 떠서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고도 세비를 꼬박꼬박 챙겨가는 두둑한 뱃심까지 겸비한 사람이 수두룩하니. 정치가 민초의 생존과 직결됐다는 사실쯤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오로지 젯밥에만 눈먼 이들이라면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이 콩잎 반찬 먹는 사람의 근심을 기록했다는 뜻을 지닌 <곽우록>에서 설파한 ‘정치인이 잘못하면 서민은 죽임을 당하여 간과 뇌가 으깨어져 땅바닥에 뒹군다’라는 말을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처음도 참되게 하고 중간도 참되게 하고 그 끝도 항상 변함없이참되게 하라.”라는 『대품반야경』의 말씀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지도자가 초심을 지키며 책임을 다할 때 그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쌓인다. 설령 고초를 겪게 되더라도 나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 두려움조차 용기가 된다는 것을 전쟁의 포화 속에 휩싸인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가 몸소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나는 평생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해 왔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었다. 이제 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최소한 울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여. 젤렌스키 대통령은 해외로 망명할 것이라는 전 세계인의 예상을 깨고 취임사에서 약속한 대로 우크라이나에 남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국민들과 함께 항전 중이다. 30%대에 지나지 않던 그의 지지율이 90%를 넘어서기까지, 2022년 처칠 리더십상과 케네디 용기상을 수상하기까지 그가 국민들과 함께 흘렸을 땀과 눈물이 부럽기만 한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