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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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이별애고離別愛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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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11-29 14:54 조회2,58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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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의 끝자락에 사랑하는 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인간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필연이며 불생불사不生不死, 생겨나지도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조차도 위로가 되지 않는 영원한 이별의 순간. 생명의 소멸 앞에 사람은 어찌 그리도 무력한가.


 그녀가 남긴 미완未完의 노트를 열어 본다. 첫 장에 써놓은 ‘죽음이란 인생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일깨워서 더 참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선물’이라는 글귀가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그녀의 다짐인 것 같아 마음이 젖어든다. 살고 싶었을 것이다. 두려웠을 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듯이 혼자 감내할 수밖에 없는 궁극의 외로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글 한 편을 옮기며 두 손을 모아 본다. 그녀가 다다르는 내생來生이 부디 극락정토極樂淨土이기를. 안온하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부디 못다 이룬 현생現生의 꿈 이루기를.


 6년 전 다발골수종 진단을 받았던 날보다 더 아득해졌던 건 3년 전 재발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처음 발병했을 때는 이겨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고 복직해서 다시 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투병의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재발을 하고 보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체력은 바닥이 났다. 업무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으로 수간호사 자리를 내놓고 평간호사로 내려앉았지만 그마저도 감당할 힘이 없어서 결국은 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상실감과 가족에게도 짐이 되고 있다는 자책감, 사회에서도 인생에서도 낙오자가 된 것 같은 절망감은 삶의 의미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다발골수종, 흔하지 않은 병이었다. 병보다도 그와 관련된 임상학적인 자료가 거의 없다는 게 더 두렵고 막막했다. 혈액 암 중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다발골수종은 재발이 잦고 완치가 힘든 병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의학 서적을 뒤져 봐도 오래전에 나온절망적인 연구보고가 고작이었고, 병동에도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간호사가 없었던 터라 많은 것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20년이 넘도록 간호사로 일했으니까 알아서 잘 하겠거니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나를 많이 외롭게 했다.


 그래도 현장으로 돌아가니 살 것 같았다. 조혈모 자가이식을 시작으로 항암을 마치기까지, 어둡고 긴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마침내 다시 간호사복을 입었을 때, 나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소중했고, 진심으로 환자를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환자를 돕게 된 간호사로서의 변화에 깊이 감사했다.


 3년 만의 재발! 운명은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아팠다. 힘들었다. 괴로웠다. 결국 나는 두 손을 들었다. 20여 년간 나의 자존심이자 자긍심이고 자부심이었던 간호사 가운을 벗으면서 나는 패배자의 자괴감으로 절망하고 또 절망했다. 그 어떤 희망도, 사회적인 고립감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도 없었다. 살고 싶은 생각마저 사라졌다. 두렵지 않다는 것, 세상에 그것보다 더 처절하고 아픈 말이 또 있을까.


 이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병실에서 발견한 『행복편지』라는 한 권의 책이었다.


 먼저 입원해 있던 환자가 두고 간 듯, 창문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그 책이 눈에 들어온 건 고열로 몇 날 며칠 진을 빼고 난 후 였다. 책을 읽겠다는 생각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책장을 넘겨보는데 ‘하루하루가 암에 답하는 삶… 그래서 행복하다.’라는 서문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게 왜? 어째서 행복해?”라는 반발심에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장암 환자였던 글쓴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암과 맞서 싸워 이기자는 투병기라기보다는 암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자는 따뜻한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책 속에 담긴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게 했다. 늘 최고를 향해 달렸고, 그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최선을 다했던 수간호사.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기를 원했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강하게 질타했었던-깐깐할 만큼 꼼한 성격을 지닌 완벽주의자가 거기 있었다.


 책은 또 내게 원대한 목표나 큰 기대가 실망과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깨우쳐 주었다. 목표를 낮추자. 기대를 내려놓고 입장바꿔 생각해 보자.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오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내 몸을 사랑해 주자.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재발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암 환자들의 숙명이다. 어디가 아프거나 열이 조금만 나도, 기운이 떨어지고 몸이 처져도 재발이 아닐까 염려가 앞선다. 하지만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걱정근심 대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고, 틈틈이 운동을 하고,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취하고, 책을 읽으며 세상과 만나고,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완결이다. 그것이 언제이든 ‘후회 없도록’이라는 거창한 욕심을 버리고 ‘후회가 적도록’ 알찬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다짐하는 여유도 생겼다.


 오늘도 나는 고통이 잠시 잦아드는 시간 틈틈이 지난 6년간의 기억을 정리하고 있다. 다발골수종이라는 흔치 않은 병을 짊어지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나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어두운 밤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빈약하나마 그의 발밑을 밝혀 주는 희망의 등불이 되어 주고 싶다.


 오래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손뼉 치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자식들을 본 적이 있다. 일곱 명의 자식들 가운데 아들 둘을 사제로, 딸 셋을 수녀로 봉헌한 어머니의 유언에 따른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에게 그날은 하느님의 나라로 가는 기쁜 날이었다. 그들이 다시 만날 것을 믿는 천국, 그곳은 불가佛家의 극락정토와 같은 곳 일지도 모르겠다던 그날의 생각이 새삼스레 가슴에 닿아온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사람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은 모두 다 죽는다. 마치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인 것처럼 어제같은 오늘을, 오늘 같은 내일을 살아가지만 그것이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고 마침내 죽음과 조우하게 되는 일이다. 그게 자연의 순리이고 삶의 여정이다. 그나마 위안을 삼자면 혼은 사멸되지 않는다는 것. 죽어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육신을 떠난 후에도 전생前生과 현생現生, 내생來生으로 이어지는 삼생 윤회三生輪回를 거듭한다고 하지 않던가.

주어진 날, 주어진 시간을 아름답게 살아야 할 까닭이 생겼다. 생의 갈피는 다를지언정 혹시 모를 일이다. 삼생의 어느 길목에서 그리운 그녀를 만나게 될는지도. 그때는 웃어야겠다. 눈물 없이,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