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야기 | 때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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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23 조회5,67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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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까치
들판을 지나온 산들바람도 어제와 달리 갓난아기 다루 듯하고, 꽁꽁 얼었던 대지도 질퍽한 온화함을 품어낸다. 온화하고 평온한 이 판국에 산통 깨는 놈이 있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연신 “껙! 껙! 께께께께...” 요란한 소리를 쏘아 댄다. “껙! 껙! 께께께께...” 때까치다.
겨울철이라면 해질녘 적막한 들판을 걷는 나그네에겐 낯선 객지감을 달래주는 정겨운 소리일 수 있다. 또한 얼어붙은 채 깊은 잠에 빠져있는 세상 만물들에게 ‘항상 깨어있어라’라는 짙은 일깨움을 주는 쓴 소리 같기도 하다. 이번만은 그렇지 않다.
산통 깨는 소리다. 여름철에만 찾아와 번식하는 노랑때까치와 칡때까치도, 겨울철에만 드물게 찾아오는 물때까치와 큰재개구마리 뿐 만 아니라 미조(迷鳥-길잃은 새)로 알려진 긴꼬리때까치도 마저 조용히 지낸다. 유독 요 때까치만 요란스럽다.
우리나라에는 때까치, 노랑때까치, 칡때까치, 물때까치, 큰재개구마리, 긴꼬리때까치 등 총 6종의 때까치과에 속하는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때까치의 경우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동북아 전역에 분포하며 텃새로 생활한다.
몸길이는 20cm 정도이며 암수의 깃 모양은 다르다. 수컷은 머리가 적갈색이고 몸의 윗면이 회색인 반면 암컷은 머리와 몸의 윗면 모두가 옅은 적갈색이다. 하지만 이 시끄러운 때까치도 번식기에는 조용하다. 둥지의 위치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보통 4월쯤에 번식을 시작하며 나무줄기에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둥지를 만들고 회백색 바탕에 적갈색의 얼룩이 있는 알을 5-6개 정도 낳는다. 청개구리나 장지뱀과 같은 작은 크기의 양서․파충류와 메뚜기, 잠자리 등의 곤충류를 주로 먹는다. 흥미로운 것은 때까치의 경우 잡은 먹이를 철조망이나 뾰족한 나뭇가지에 잡은 먹이를 꽂아두는 습성이 있다.
국내에 서식하는 때까치과에 속하는 조류 대부분은 Lanius 라는 속명을 사용한다. Lanius 는 라틴어로 도살자로는 뜻으로 때까치류의 먹이습성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
때까치류는 육식성으로 배가 부르더라도 먹이감이 보이면 우선 잡아서 보관하는 습성을 지녔다. 간혹 때까치가 보이지 않더라도 꽂혀 있는 먹잇감을 보면 그 지역에 때까치가 서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외가댁 옆집의 꼬마가 기르던 때까치도 먹이를 주면 죽은 땡자나무의 가시나 TV안테나에 삐져나온 철사 끝에 꽂아 두곤 했었다. 그 때까치의 이름을 ‘순이’로 기억하는 데 ‘순이’는 어릴 적 둥지에서 떨어진 녀석을 주워 와서 기른 탓에 어미로부터 배운 것이 없었다. 따라서 때까치의 먹이 꽂는 습성은 학습보다는 본능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내가 새를 공부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순이’도 한 몫을 했다. 처음 만난 ‘순이’는 외가댁 옆집 꼬마의 어깨 위에 앉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길들여져서 스스로 꼬마의 어깨 위에 앉았다기보다는 아직 날개짓이 서툰 순이를 어깨에 앉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 꼬마는 늘 자랑삼아 어깨위에 순이를 데리고 다녔고 나 뿐만 아니라 동네아이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한번이라도 순이를 내 어깨 위에 올려놓으려면 하루 종일 꼬마의 온갖 비위를 맞춰주어야 했고 나도 못먹는 어렵게 구한 과자를 그를 위해 개봉해야 했다.
겨우 허락을 받아내더라도 잠시 어깨에 앉히고선 얄밉게도 금방 데려 가곤 했다. 꼬마가 내 어깨의 순이를 떼어 낼 때 순이 발톱이 내 어깨의 옷감를 뜯으며 내는 ‘툭툭’ 하는 소리와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방학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즈음 순이는 꼬마네 집주변을 경계로 오가며 생활할만큼 비행 실력이 높아졌고 먹이를 주면 받아먹거나 주변의 뾰족한 곳에 놓아두곤 했었다. 개학과 동시에 자연스레 순이와의 이별이 이뤄졌고 순이를 보고픈 맘으로 인해 외가댁을 방문할 기회만 찾고 있었다.
다시 찾았을 때는 추석 즈음인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에서 내려 걸음이 마을에 들기 무섭게 꼬마네로 향했다. 꼬마도 순이도 없었다. 한참 후 동구 밖에서 만난 꼬마의 어깨엔 순이가 없었다.
행방을 묻자 모른다고 했다. 방학이 끝날 즈음 비행에 제법 익숙한 순이는 집 주변 어딘가에 머물며 주는 먹이를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을로 접어들수록 개구리나 메뚜기를 잡아오는 아이들도 점점 줄고 그만큼 순이에게 주는 먹이 횟수도 줄자 순이는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나타나는 빈도가 줄어들다가 결국 사라졌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한 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아쉽게 끝이 났다. 한동안 외가댁에 가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순이가 태어난 둥지가 있었던 감나무에 올라서 둥지 자리를 내려다보곤 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외갓집을 찾는 횟수가 뜸해졌다.
올 봄엔 커버린 그 감나무를 찾아 순이가 자란 둥지를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연구자로써 지녔던 초발심이 그곳에선 변치 않고 있을지도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