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야기 | 수리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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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09 조회5,66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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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부엉이
(Eurasian Eagle Owl / Bubo bubo)
“부엉 부엉새가 우는 밤 부엉 춥다고서 우는데”
계절도 지겨운 듯 긴 하품 뒤에 온기를 토해내고 어제까지 얼음으로 멈춰있던 호수엔 하루 만에 별이 출렁인다.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내놓고 간 찌개에선 뽀글뽀글 피어나는 김이 요란하고 닫힌 문 너머에선 엄마를 더듬더듬 따라 부르는 여자 아이의 동요 소리가 흘러나온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며칠째 계속 들르는 식당 안은 여전히 손님은 없지만 오늘도 온기는 가득하다. 노래 탓인지 조사 차 한동안 머물고 있는 시골 마을에선 오늘따라 어릴 적 외갓집의 냄새가 난다. 대나무 밭을 지나는 바람소리와 그 바람 때문에 우는 문풍지 소리도 그립다. 타닥타닥 화로에서 튀는 군밤 냄새도 그립고 군불로 지펴진 사랑방의 온기도 그립다.
노래 말에 나오듯 부엉이는 수리부엉이 인 듯하다. 다른 부엉이 보다 개체수가 많고 겨울철에 우는 횟수가 많기 때문이다. 따뜻한 봄날에 번식하는 대부분의 조류와는 달리 수리부엉이는 늦은 겨울에 번식을 시작하므로 겨울철에 주로 운다. 특히 짝짓기인 2월에는 “부우엉, 부우엉” 암수가 주거니 받거니 이중창으로 소리를 내며 수컷의 경우 첫 음절이 강하고 전체적으로 힘이 있으며 암컷은 수컷보다 소리는 빠르고 고음이다.
수리부엉이는 크고 강건한 새로 몸길이는 60-70cm 정도이며 펼친 날개길이는 2m에 달한다. 무게는 대체로 2-3kg 정도이며 큰 것은 4kg에 달하기도 한다. 주로 들쥐나 토끼 같은 포유류나 오리, 꿩 등 조류를 사냥하며 때에 따라서는 곤충도 먹기도 한다. 암수모두 동일한 깃을 지녔으며 전체적으로 황갈색을 띤다. 몸의 윗면은 아랫면 보다 어두우며 회색반점이 섞인 황갈색바탕에 굵은 암갈색 무늬가 있다.
번식기간 동안 암컷은 포란과 새끼를 돌보고 수컷은 사냥을 도맡아 한다. 수컷이 사냥한 먹이를 둥지에 직접 넣어주거나 일정한 장소에 두면 암컷이 가져가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선 수리부엉이 둥지를 찾으면 고기 걱정이 없어진다는 말을 할 정도이다.
수리부엉이 둥지에 쌓인 먹잇감을 가져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수리부엉이의 입장에선 둥지가 노출된 탓에 대부분 번식을 포기하게 되고 둥지 내 새끼는 굶어 죽게 된다. 둥지를 포기한 수리부엉이 얘기는 여러 번 듣고 본 적이 있지만 10여 년 전의 안타까움은 아직도 생생하다.
경기도 북부 지역에 수리부엉이 둥지가 있다는 제보를 받고 현장을 간다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둥지 접근을 가급적 피하기 위해 건너편 산에서 둥지 내부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이틀째 어미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새끼를 구조해야 할지 아님 더 지켜봐야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해서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현장으로 갔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즈음 도착한 현장엔 눈보라가 먼저 도착해 있었고 암벽 위쪽에 자리한 둥지에는 눈이 얇게 쌓이고 있었다. 알에서 깬지 며칠 되지 않은 듯 한 흰 솜털의 새끼들은 서로의 몸 이외엔 그 어떠한 은폐물도 없었다. 하지만 둥지 주변 어딘가에 있어야 할 어미는 보이질 않았다. 밤이 깊어 갈수록 기온은 더 내려만 가고, 지켜보는 우리의 속은 타들어 갔다.
새끼 중 한 마리가 형제들과 엉켜 붙지를 않고 홀로 떨어진 체 움직임이 희미해져 가자 결국, 새끼 모두를 구조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눈 때문에 바위를 직접 오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산 뒤편으로 올라 정상부에서 접근하기는 더욱 무리였다. 다른 전문가들도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하여 우리는 다음 날, 날이 밝아오면 오르기로 하고 차에서 아침을 기다렸다.
밤이 깊어갈수록 눈은 그칠 줄 모르고, 새끼들의 작은 움직임도 눈보라에 묻혀 사라져 갔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하고 추위를 피해 차 속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기만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발견된 둥지는 온통 흰색이었고 작은 눈덩이 세 개 만 봉곳이 솟아 있었다. 솜털보다 더 곱고 따스한 솜뭉치들 모두는 이미 얼음이 되어 있었다.
되돌아오면서 제보자는 자랑하듯 여러 곳의 둥지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해매다 둥지를 바꿔가며 둥지를 튼다는 것도 일러 주었다. 매번 둥지에서 꿩이나 토끼를 얻고 올해도 좀 전에 들른 둥지에서 꿩을 여러 마리 가져왔다고 했다. 제보자 탓에 수리부엉이 어미는 둥지를 포기한 것이었고 매번의 번식을 자리를 옮겨서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둥지마다 약탈을 당했고 또 번식을 포기했을 것이다. 제보자에게 수리부엉이가 ‘멸종 위기종’이며 ‘천연기념물’라는 것을 알려주었고 의도적이지는 않았지만 죽은 새끼들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것과 다시는 수리부엉이 둥지에 오르지 말라는 협박과 당부를 하고 돌아왔다.
10여년이 지나는 동안 간혹 궁금해지긴 했지만 들르진 못했다. 이번 출장에서 돌아가면 그곳에 가볼까 한다. 그때 긴 밤을 지세며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그 어미들을 이번에는 꼭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부엉 부엉’하고 소리가 잔잔히 울리는 그곳엔 외갓집의 사랑방이 있을 것 같고, 문을 열면 화롯불 온기와 함께 빙그레 웃으시는 외할머니의 미소가 내 얼굴에 와 닿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