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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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 | [지장스님의 향유] 마음의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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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9-05 16:42 조회1,93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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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에서 정동원이라는 나이 어린 소년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가 있습니다.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 늙어 가는 게 슬프겠지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저녁이면 벗게 되니까

 내 손에 주름이 있는 건 길고 긴 내 인생에 훈장이고

 마음에 주름이 있는 건 버리지 못한 욕심에 흔적 

청춘은 붉은 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

 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거야

……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우리라.”


 김종환님이 작사 작곡한 ‘여백’입니다. 노래도 잘 불렀지만 짧은 노래 가사 속에 우리네 인생의 진면목을 반추하게 합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은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모르는지 조차도 모릅니다. 솔직히 독립적으로 있는 건지 없는 건지도 모르구요. 아마도 늘 빠르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분명하지 않지만 마음이 사랑, 행복, 슬픔, 고통 등을 빚어내는 것은 확실합니다.


 마음이 빚어내는 내용들은 아쉽게도 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습관과 기억, 주위환경, 몸의 컨디션, 뇌의 생물학적 과정등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마음을 ‘나’ 혹은 ‘내 것’이라고 단정 짓지 못하기도 합니다. 정말로 마음이 주인이라면 그냥 내가 원하는 마음대로 되거나 혹은 마음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겠지요.


 마음의 내용들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진행됩니다. 직접적으로 내용 자체가 때론 불편하고 불만족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무의식적인 의식의 흐름과 주변 상황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도 불편하고 불만족스럽습니다. 반면 주변 상황이 내 안에 흐르는 고유한 의식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을 때 우리는 만족, 편안함을 느낍니다. 내 안에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흐르는 이런 의식의 흐름을 업력業力이라고 부릅니다. 업력은 살면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어 갑니다.


 세상은 알거나 모르는 무수한 관계 차원으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관계들은 내 마음대로 통제되는 것도 아니며, 서로 다른 업력들이 매 순간 충돌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들 각자는 자신의 통제력이 더 넓어지기를 갈망합니다. 그것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통제력의 주도권을 누가 쥐었느냐에 따라 갑을 관계가 맺어집니다. 흔히 인간에게는 자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우리의 생활은 그다지 자유롭지 못합니다. 통제력이 없으면 피곤하고 불만족스럽지요. 이런 상황이 만성화되면 앞의 노래 가사처럼 자신을 충전할 시간도 마음의 여백도 없어집니다.


 더 근원적인 원인은 마음이 빚어내는 온갖 내용들을 적절히 걸러내지 못하고 그것들에 쫓겨 살거나 혹은 그것들을 쫓아서 살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그림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와 같습니다. 살다 보면 어쩌다 세상만사 욕심 속 물감의 장난으로 깨달아질 때도 있습니다. 철들은 거지요. 그 때가 되면 좀 여유로워질까요? 알아도 기존 업력의 힘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철듦이 제대로 찾아왔다면 화려한 삶이 아니라 아름다운 삶을 갈구할지도 모릅니다. 그때의 아름다움은 당연히 물질적인 차원은 아닐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꾸고 꽃 피워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나와 타인, 나와 환경, 몸과 마음, 세상의 순리 등과 조화로운 관계를 맺을 때 빚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을 먹을 것인가 애쓰기 보다는 어떻게 관계를 잘 맺을까 애쓰는 것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만이라도 어떤 관계들을 맺고 있는지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처음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관계의 장애들을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업장業障이라고 부릅니다. 무엇이 이런 장애들을 만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나의 신념과 가치기준이 세상의 중심도 아니며, 틀릴 수도 있고,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단지 나도 모르게 형성된 행동양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업장은 느슨해 질 것입니다. 한 가지를 강력히 믿으면 다른 것을 못 믿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안 믿으면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을 믿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여백은 새롭게 얻어지는 어떤 상태가 아닙니다. 관계들을 좀 더 넓게 좀 더 조화롭게 아우르는 마음의 시선이 가져다주는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