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업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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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9-05 15:52 조회1,97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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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자들은 인류의 불평등을 어떻게 설명할까요? 그들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이러한 불평등을 화학 물리적 원인, 유전 및 환경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DNA라는 것이 인간의 모든 형질을 결정하는 주원인이라고 봅니다. 즉 유전자에 의하여 인간의 미추가 결정되고 성격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조작에 의하여 인간의 모든 형질과 특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과학자들의 입장입니다. 실제로 유전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에 의하여 동물을 복제해 내기도 하고 다른 형태의 동물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사람도 유전자에 의해 부모의 특질을 물려받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이 닮기도 하고 형제간에도 많이 닮습니다. 가끔 좀 다르게 생긴 자식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친가나 외가 쪽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그런 형질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었던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하물며 일란성 쌍둥이라도 어릴 적 헤어져 완전히 다른 삶을 살다가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고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지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진 DNA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화학적 물리적 현상이 부분적으로 인간의 태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차이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을 수 있을까요? 유전자에 의하여 가족 간에 신체적으로 비슷하고, 같은 환경 아래에서 양육 되어도 다른 성격에 다른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같은 형제라도 누구는 선량하고 누구는 포악한 경우가 있습니다. 유전만으로는 이러한 엄청난 차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대부분의 차이점보다 약간의 유사점을 더 그럴듯하게 설명합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는 인간의 일부, 즉 신체적 기초만을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복잡하고 미묘한 정신적, 지적, 도덕적 차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더 많은 원인을 찾아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 이론만으로는 훌륭한 가문에서 흉악한 범죄자가 나오기도 하고 미천한 가계에서 성인이 나오는 등의 설명을 하기에 미흡합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예능에 소질을 보이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현저한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선량한 부모 밑에서 온순한 아이가 있는 반면 한 아이는 형제를 괴롭히는 난폭한 아이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흥부 놀부 이야기처럼 같은 형제라도 성격은 매우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오직 유전자만으로 해석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불교적 관점으로는 이러한 차별상을 유전, 환경 등 겉으로 드러난 요인뿐만 아니라 운명의 향방에는 업의 작용이 있다고 봅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같은 형제라도 각기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이 물려받은 과거의 행동과 현재의 행동의 결과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마지마 니까야(중아함경)』에는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수바(Subha)라는 젊은 구도자가 붓다에게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에 대하여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은 장수하고 어떤 사람은 단명하며 어떤 사람은 병약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며 어떤 사람은 못 생기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우며 어떤 사람은 약하고 어떤 사람은 강하며 어떤 사람은 가난하고 어떤 사람은 부자이며 어떤 사람은 하천하며 어떤 사람은 고귀하고 어떤 사람은 우둔하고 어떤 사람은 지혜로운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붓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중생은 자신의 업(까르마)에 따라 선천적 환경을 지니고 태어난다. 천하고 귀한 것은 모두 업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인과율에 따라 이러한 차이의 원인을 설명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생명을 파괴하는 사냥꾼이어서 그의 손에 피를 묻히고, 죽이고 상처를 입히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면, 그는 그 죽음의 결과로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 단명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복과 불행에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의 업이 우리의 태생의 기본을 형성하고 또 매 순간 지어가는 업의 작용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괴로운 것으로도 행복한 것으로도 만들어 갑니다. 『담마빠다(법구경)』에도 있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이 업을 짓는 주체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괴로움도 만들고 즐거움도 만들어 갑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지어 놓은 업의 결과에 따라 우리의 운명을 만들어 갑니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보면 만약 어떤 사람이 살생을 피하고 모든 생명체에게 자비롭고 자비로우면, 그는 다시 태어났을 때 장수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살생과 폭행을 즐기는 버릇이 있다면, 그는 다시 태어났을 때 단명하거나 여러 가지 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화를 잘 내고 짜증을 내며 악의와 분노로 가득한 삶을 산다면 그는 다시 태어났을 때 추한 용모를 지닐 것이며, 부드럽고 친절한 삶을 산 사람은 다시 태어났을 때에 용모가 아름다울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장수멸죄경』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