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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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업장소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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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8-30 13:52 조회2,49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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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自覺으로 기연機緣을 만들어 주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나이 들면서 새삼 업業의 힘이 참 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젊은 시절,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발심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뼈저리게 긍정하게 된다. 집 화장실에서 젖은 신발을 물기가 마르도록 세워놓는 일 하나도 쉽지 않다. 아이들을 나무라도 고쳐지지 않아 어른이 모범을 보이려면 좀 나을까싶어 지심으로 세워놓지만 상황은 여전하다.


 사람의 버릇은 고치기 힘들다 생각하다가 스스로를 돌아보니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그렇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버릇 하나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의 지적을 받기 일쑤다.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남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영락없는 범부(凡夫)여서 부끄러워진다.


 왜 사람은 잘 변하지 않을까. 우선은 변화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신발에 물이 젖으면 다소 불편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 치명적인 피해는 입지 않는다. 이래도 저래도 큰 탈이 없으니 대수롭지 않게 대하고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변화의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부지불식간에 무심코 하는 행동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남들은 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낌에도 본인만 느끼지 못하는 경우, 주위의 대중들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어떤 지적을 받았다면 일단 따라줄 필요가 있다. 불교의 자자自恣와 포살布薩은 바로 이런 뜻을 담은 공동체 전통이 아닐까.

 화장실에서는 신발이 젖지 않도록 주의하고, 젖었다면 세워놓는 것이 좋다는 자각自覺이 중요하다. 그러고 보면 자각하는 정도에 따라서 변화는 오기 마련인 것 같다. 필자도 건강에 도움이 되도록 채식 위주로 가야 한다는 강한 결심이 서면서 식습관이 더 달라졌다. 예전보다 훨씬 고기 섭취를 줄이게 되었고 인스턴트 음식이나 간식도 가급적 삼가게 되었다.


 결국 스스로의 깨달음이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주위에서 좋은 말로 타일러도 본인이 납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그래서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하지는 못한다는 말이 있는지도 모른다. 명령이나 강요는 복종을 가르치거나 반발을 불러올 뿐 내심에서 비롯하는 행동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한다.


 거센 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길 수 있었던 것은 땀을 뻘뻘 흘리게 된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되었기 때문이다. 옷을 억지로 벗기려 할 것이 아니라 벗을만한 조건을 형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서로가 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두는 일도 중요할 것 같다. 나도 상대방도 일시에 급격히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자각하는 만큼 변한다. 그러니 스스로의 자각自覺으로 기연機緣을 제공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오랜 동안 소식조차 끊고 살았던 이로부터 돈을 돌려받게 되었다. 그 분은 수십 년 만에 전화를 걸어와 오랜 숙제라며 돈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무엇이 그 분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을까. 무엇인가 변화를 가져올만한 인연의 씨앗이 싹텄고 그것이 결실을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터이다. 과거의 업을 청산하고 새 출발하게 된 인연에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불교는 무엇보다 자각의 종교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처음에는 믿음으로 시작하지만 마침내 진리를 스스로 확인하는 자증自證의 깨달음으로 회향한다. 몸과 마음이 원만하고 완전하게 성취되는 안심입명安心立命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자각, 즉 깨달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