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선성취 | 어느 개그맨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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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11-01 15:56 조회1,83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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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환은 1997년 MBC 공채 8기 개그맨으로 정식 데뷔하여 ‘웃는 날 좋은 날’을 시작으로 다양한 개그 방송과 다수의 드라마에 배우로 출연하며 인기가 많았던 개그맨이었지만 2005년의 사건을 계기로 사업가이자 작가,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드라마 ‘해신’을 촬영하고 서울로 오던 고명환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사고로 왼쪽 눈 주위와 이마가 크게 찢어졌고 뇌출혈까지 왔다. 그런데도 천운으로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당장 1초 뒤에 의식을 잃을 수 있어요. 길어야 이틀입니다.” 그는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언제 심장이 터질지 모르니 빨리 신변 정리를 마치라는 말도 들었다.
그 순간부터 고명환은 삶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생각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뇌가 알아서 삶을 재생했다. 영화가 상영되는 방에 홀로 있는 느낌이었다. 죽음과 바짝 붙은 그의 뇌가 보여주는 건 의외의 장면이었다. 패기 어린 시절 밀어붙인 4개월간의 재수생 생활, 그것이었다. 대학 개그제에서 금상을 탄 순간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남자 우수상을 받은 장면조차 ‘1’도 나오지 않았다.
‘내 삶에서 100% 내 의지로 산 기간은 그 4개월이 전부구나. 34년을 살았는데, 진짜 내 인생을 산 기간은 4개월밖에 안 되는구나.’
고명환은 깨달았다. 그 4개월이 아닌 나머지 모든 삶은 끌려가는 생이었다. 휘둘리는 생이었다. ‘내 의지로 이끌어가는 삶의 순간을 4개월에서 40개월, 아니 400개월 그 이상으로 만들겠다.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고명환은 거듭 되새겼다. 기적이 또 문을 두드렸다. 그의 심장은 터지지 않았다. 멈추지도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일주일을 넘겼다. 고명환은 일반실로 옮겨졌다. 얼마 뒤 퇴원까지 했다.
퇴원 후 고명환이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책이었다. 당장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유익한 게 독서라고 봤다. 그때부터 지겹게 읽었다. 잡히는 대로 탐독했다. 일이 없으면 하루에 15시간씩 책만 잡았다. 많이 읽을 때는 한 달에 30권 즉, 하루에 한권씩 읽었다. 어느새 집에는 책만 5,000여 권이 쌓였다. 그사이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의욕이 생겼다. 옭아매는 모든 일을 뒤로한 채,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제대로 책을 읽은 지 18년이 지난 현재 고명환은 다수의 사업체를 운영 중이며, 쉬는 날에는 책을 쓰고 강연도 나간다. 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가는 곳마다 인기강사로 대우받는다. 사고 이전과는 180도 다른 삶이다.
고명환은 자신이 쓴 책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에서 삶을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낙타의 단계로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알 수 없는 짐을 얹고는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걸어간다. 대부분의 인간이 낙타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힘들어도 왜 힘든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버티며 견뎌내는 것이다. 주어진 길을 끌려간다.”
두 번째는 사자의 단계로 “자신이 목적지를 정하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간다. 두려울 것이 없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어도 스스로 극복할 줄 안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경쟁하며, 승리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사자는 자기만을 위해 사냥한다.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생존의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어린아이의 단계로 “아이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긴다.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욕망도 없다. 그저 자기 자신으로서 자유롭게 행복한 단계이며, 가장 자기다운 단계다. 또한 어린아이는 무한 긍정이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늘 아름답다.”
고명환은 우리들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언제든지 질 수 있다. 실패도 할 수 있다. 자꾸 진다. 그런데 이 말은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패’는 해도 되지만 ‘배’는 없어야 한다. 패배를 한자로 살펴보면 패敗자의 뜻은 ‘지다’다. 누구나 질 수 있다. 지는 게 당연하다. 져도 괜찮다. 그런데 배北자의 뜻은 ‘도망가다’이다. 절대 도망가서는 안 된다. 도망가면 영원히 이를 수 없다.”
낙타의 단계와 사자의 단계, 그리고 어린아이의 단계……. 우리는 오늘 바로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