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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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소리 | 미묘한 인연사因緣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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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2-02 14:19 조회2,1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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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대처는 어떤 것일까. 새해 벽두부터 사고 때문에 금전적 손실을 입게 되었지만 ‘이만해서 다행이야’ 하고 마음을 달랬다. ‘이랬으면’ 하고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이렇게 좀 하지’ 하고 누군가를 원망한들 사태 해결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액땜 잘한 셈 치고 지나자 하는데 인연사因緣事란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보통 어떤 사건이나 사태에 대해 어쩔 수 없을 때 혹은 전말을 제대로 알 수 없을 때 ‘인연’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같다. 어떤 일이 생기는 이유나 원인에 대해 대강은 알더라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음을 경험한다. 따지고 보면 세세한 인연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할 것이다. 물론 부처님만은 예외로 해야겠지만.


 그래서 인연은 깊고 미묘하다고 말하는가 보다. 보통 우리가 이러한 인연사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하는데도 이 정도 먹고 살아가고 있음을 돌아보며 “그래. 모든 게 인연이구나” 하고 받아들이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다양한 인연 가운데서도 주목할 것이 사람 인연이다. “이런 사람을 가졌는가?” 하고 누가 묻는다면 제대로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부모자식 인연만큼 지중한 인연이 있겠나만 그 외로도 소중한 인연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쳤다. 한 사람이 최대한 관리 할 수 있는 사람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 위안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얼마 전 인연의 지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 일이 있었다. 필자를 위해 기도해 준 이를 뒤늦게 알게 될 줄이야. 부모님을 비롯해 나를 위해 정성을 기울여주는 분들을 그동안에는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지나쳤는데, 이번에는 전혀 당연하지 않고 예상치도 못한 분이라서 그랬는지 놀람이 컸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해준다는 것은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일 아닌가. 그런데 이 분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필자를 위해 노심초사하던 한 지인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주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떤 인연일까.


 그러고 보니 방송출연 의뢰를 위해 전화로 인사를 드리는데 “저 국장님 알아요.”가 첫마디였던 것 같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 때는 몰랐다. 방송국에 오래 있으니 방송을 통해 알았거니 혹은 불교계에 오래 있으니 그런 인연에서 알게 된 것 아닌가 짐작만 했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통화는 했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는 듣지 못한 터였다.


 몇 년 째 모르고 있던 소이연所以然을 얼마 전에야 지인으로부터 직접 전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누님이 아는 어느 스님과  지방 근무 시 인연이 된 분 등 나를 위해 기도하고 지도편달 해주신 여러 분들이 떠올랐다. 내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은혜를 갚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빙산의 일각처럼 아는 부분보다 모르는 부분, 또 잊고 지내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깨달음과 더불어 언제 어떻게 다가오든 그 인연을 소중히 맞이하고 가꿔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더 굳어졌다.


 한 때는 세속의 인연을 떠난 뭔가 완벽한 경지를 추구하며 그런 것이 탈속이자 열반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이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판타지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자각에 더이상은 찾지 않게 되었다. 열반은 지금 이 자리에서 정성을 다하는 길 밖에 없다는 믿음도 더 두터워졌다. 인연의 소중함을 알고 제대로 가꿔나가는 불자가 되길 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