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보시布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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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2-02 13:39 조회2,50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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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종시와 무주상보시
보시의 종류는 무수히 많다. 재물이나 물건을 가지고 행하는 재시와 사람들에게 이로운 진리를 설하여 베푸는 법시, 그리고 온갖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무외시에 대해서는 이미 말했다. 이러한 삼종시 이외에도 불교에서는 팔종시라고 하여 8가지의 보시를 들고 있다.
사람들은 보시를 하면서도 무주상보시를 하기는 무척 힘들다. 그것은 보시바라밀이 이루어질 때에야 가능한 보시이다. 보시의 마지막인 무주상보시는 보시를 받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청정하게 취득한 것을 가지고 집착 없이 마음에 바라는 것이 없이 하는 것이다. 그럼 일반 사람들은 보통 어떤 마음으로 보시를 할까? 그래서 나누어 본 것이 팔종시이다.
여기에는 먼저 수지시隨至施라는 것이 있다. 나에게 가까이 오는 사람에게 먼저 하는 보시이다. 즉, 나와 관계있는 사람에게 우선하는 보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수지시를 행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나와 관계있는 사람부터 먼저 챙기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이니까 이것을 딱히 나무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대승보살도를 닦는 보살이라면 멀고 가까움이 없이 보시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포외시怖畏施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자기가 가진 재물이 없어지거나 못 쓰게 될 것을 걱정하여 하는 보시이다. 먹을 것은 쌓아 놓는다고 언제든지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음식은 쌓아놓으면 곧 부패하기 마련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굶는 사람들에게 얼른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남방 불교의 탁발도 더운 나라의 특성상 음식은 곧 상하기 때문에 수행자들에게 보시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풍습일 것이다. 또 어떤 물건은 시간이 지나면 효용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금 필요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낫다. 그런 마음에서 하는 보시를 포외시라고 한다.
이어 보은시報恩施라는 것이 있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되갚기 위하여 하는 보시를 말한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보답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 도리이다. 사람은 남에게 신세진 것은 금방 잊어버리고 자기가 베푼 것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 보은시는 훌륭하다고 할 것이다.
또 구보시求報施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남에게 베풀면서도 다음에는 자기도 그에 걸맞는 보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보시이다. 내가 준만큼 되돌아오기를 바라면서 하는 보시는 진정한 보시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보시의 공덕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 습선시習先施라는 것이 있다. 조상 때부터 해 오던 보시를 자손들이 이어서 보시하는 것이다. 이런 가문은 번창하고 오랜 복을 누릴 수 있다. 또 희천시希天施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천상의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하는 보시이다.
좋은 소문이 나기를 바라고 보시하는 요명시要名施라는 것도 있다. 명예심에서 하는 보시이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공덕은 있다. 가끔 보면 이름을 감추고 큰 보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의 보시는 요명시와는 반대되는 공덕으로 큰 보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보시들은 무주상보시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보시의 공덕을 바라고 하는 보시이기 때문에 그 공덕은 크지 않다. 그러나 이런 보시도 보시를 전혀 하지 않는 인색한 사람보다는 훨씬 나은 것으로 적지 않은 공덕이 있다.
마지막으로 위장엄심등시爲莊嚴心等施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아끼고 인색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마음을 장엄하게 하여 바른 선정을 얻어서 열반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하는 보시이다.
어쨌든 보시는 삼륜청정이 제일이다. 보시를 하는 사람은 차별없는 마음으로, 그리고 바라는 것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보시하는 물건도 부정한 것이 아닌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 간혹 위선적인 지역 유지들이 나쁜 짓으로 모은 돈을 조금 내어놓고는 자선 사업을 하는 듯이 생색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은 보시물이 청정하지 못해서 바른 보시라고 할 수 없다. 보시는 삼륜청정의 무주상보시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보시바라밀이며 보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