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 | [속담으로 보는 불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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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12-27 12:01 조회2,43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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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예부터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불렀듯이, 한반도의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의 거리가 삼천 리 정도 된다. 그 3분의 1인 천 리라고 해도 다 걸으려면 몇 날 며칠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어쨌든, 천 리나 떨어진 먼 곳에 가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첫 발걸음부터 떼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어떤 일이든 실천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기도 하고, “아무리 큰일도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불교수행의 첫 걸음은 무엇일까? 바로 지계에 있다.
당나라 문인 백낙천이 도림선사에게 여쭈었다. “부처님 가르침의 큰 뜻이 무엇입니까?”
도림선사가 대답했다. “그 어떤 악행도 짓지 말고, 온갖 선행을 받들어 행하라.”
이 구절에 “스스로 그 마음을 맑히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공통된 가르침이다.”라는 두 문구를 덧붙이면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가 된다. 칠불통계게란 비바시불에서 석가모니불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일곱 부처님들께서 공통적으로 훈계하신 게송’이란 의미다.
도림선사는 칠불통계게 가운데 앞의 두 구로 답한 것이다. 그러자 백낙천이 말했다. “그 정도 가르침이야 세 살짜리 어린애도 아는 것입니다.”
도림선사가 말했다. “세 살배기 어린애도 알지만, 여든 살 먹은 노인도 실천하지 못합니다.”
사실 그렇다. 악행을 하지 말고, 선행을 하라는 것은 비단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의 공통된 가르침인데 이를 항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악惡을 그치고 선善을 행하려면, 선과 악의 정체가 분명해야 한다. 불전에서는 살생, 도둑질, 삿된 음행, 거짓말, 이간질兩舌, 욕설, 꾸밈말綺語, 탐욕, 분노, 삿된 종교관邪見의 열 가지를 십악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십선이다. 그래서 이들 열 가지 악행 앞에 ‘아니 불不자’를 붙여서 십선계라고 부른다.
대승이든 소승이든, 금강승이든 최상승이든 불교신행의 출발은 십선계의 실천에 있다. 불교에 입문한 후 아라한, 보살, 성불과 같은 엄청난 목표를 지향하면서 불교적 신행을 시작하지만, 그 출발은 불교적 윤리인 계행의 실천에 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궁극적으로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에 입문하지만, 지계의 발걸음을 떼어야 진정한 불자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불전에서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윤회의 현장을 욕계, 색계, 무색계의 세 곳으로 구분한다. 이를 삼계라고 부른다. 이 가운데 색계나 무색계의 경지가 되어야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들어갈 수가 있다. 즉, 내 마음이 최소한 욕계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욕계는 식욕이나 성욕과 같은 동물적 욕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세계다. 지계행은 우리를 이런 동물성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불교수행은 계, 정, 혜의 삼학으로 요약되는데, 이는 수행의 순서이기도 하다. 지계행을 통해 동물성에서 벗어나야 ‘마음을 모아서(정) 지혜를 닦는’ 정혜쌍수의 수행이 가능하다. 깨달음의 천 리 길을 가고자 할 때, 내딛는 불교수행의 첫 걸음, 바로 지계행의 실천에 있다. 계행이 없는 불자는 아직 수행의 첫 걸음도 뗀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불교를 많이 알아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