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 가마꾼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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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12-27 11:04 조회2,51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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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뻘쯤 되는 후배로부터 결단코! 맨입으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지 않겠다며 올해는 기어이! 술도 한잔 곁들여서 거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왔다. 결단코, 기어이라니. 평소에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도발적인 말투며 단호한 태도에 불안하기까지 했는데 이건 또 웬일? 약속 장소에 나온 그녀의 얼굴이 오뉴월 흐드러지게 핀 장미꽃보다도 화사하다.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웃음을 참지 못하는 그녀의 말이 무용담에 가깝다.
결혼한 지 24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는 것쯤 뭐 그리 놀라울 일이겠느냐만, 가부장적인 권위의식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 남편의 성정을 익히 아는 터라 아무리 고향이고 동창회라 해도 그녀의 1박 2일은 가히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몇 날 며칠을 남편에게 빌고 빌어서 당일치기를 조건으로 간신히 허락(!)을 받아놓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친구들의 성화를 뿌리치자니 은근히 자존심도 상하고, 아무리 화가 났다 하더라도 그래도 남편이고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 설마 죽이기야하겠냐 싶은 마음에 하룻밤을 묵어오는 모험을 감행했다는데.
남편의 성난 얼굴이 떠올라 시시때때로 마음이 졸아들기도 했으나 난생처음 소꿉친구들과 어울려 깔깔거리는 재미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나.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잠깐, 아침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서울행 기차에 오르자마자 입안에 침이 마르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의 흔쾌한 허락도 없이 외박이라니. 그것도 남자 여자가 함께인 동창회에서. 남편 뿐이겠는가. 그녀 역시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었다. 결혼 전에야 산도 좋아 바다도 좋아 친구들과 어울려 여행도 많이 다녔지만 결혼 후에는 워낙에 완고한 남편 때문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오로지 남편에게 맞춰온 그녀였으므로.
강퍅한 남편으로서는 기절초풍을 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분기탱천해 있을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친구들의 등쌀에 떠밀리다시피 남편에게 전화를 했을 때, 옆에서 한마디씩 거드는 친구들의 말에 거절도 아니고 승낙도 아니게 우물쭈물하던 남편의 진심을 읽었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무조건 읍소를 하리라, 잘못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 제발 용서해 달라….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문을 연 순간, 거실 바닥이 온통 깨진 유리조각이며 모가지 부러진 꽃, 엎질러진 물로 발 디딜 틈이 없더란다. 그녀가 가장 아끼는 꽃병이, 친정 엄마의 유품이라 1년 내내 꽃을 떨어뜨리지 않는 꽃병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던 것이다. “여자가!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외박을 하지는 않았겠지!” 냉랭한 얼굴로 쏟아내는 남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예리한 칼끝이 되어 그녀의 가슴에 와 꽂혔다. 그것은 곧 그녀에 대한 불신의 증표이자 폭력이고 탄압이었다.
그녀는 분노했다.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뜨거운 그 무엇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치욕스러웠다. 꽃밭이라 믿고 싶었을 뿐, 자신의 뜰은 이미 오래전 온갖 잡초에게 자리를 내준 쑥대밭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남편은 무자비한 점령군이었고 폭정을 휘두르는 독재자였다. 사과하는 대신 그녀는 한사코 뿌리치는 남편의 손에 거듭거듭 청소기와 걸레를 쥐여 주었다.
마침내 남편이 청소기를 밀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권위와 권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그 순간, 그녀는 남편에게 할애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을 편평하게 다듬고, 그곳에 함부로 솟아있는 불합리한 특권과 아집, 독선 따위를 뿌리째 뽑아 던지겠노라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보이더란다. 인생에 일방통행은 없다는 사실이. 아내이기 전에 여자로, 여자이기 전에 사람으로 마땅히 누리고 존중받아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양성평등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는 그녀, 그래서 그녀는 요즈음 남편과 잦은 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남편 길들이는 재미가 깨소금 맛이라며 웃었다.
“몇 개월의 시간만큼 우리는 친해졌고, 가까워졌고, 익숙해졌고, 딱 그만큼 미안함은 사소해졌고, 고마움은 흐릿해졌고, 배려는 당연해졌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의 대사다.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더욱더 크고 깊어져야 할 미안함과 고마움과 배려가 친해졌다고 해서, 가까워졌다고 해서, 익숙해졌다고 해서 사소해지고 흐릿해지고 당연해지는 이 아이러니가 우리 갑남을녀들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다. 24년 전 풋풋했던 그녀의 헌신 역시 그녀 남편에게도 싱그럽고 기꺼웠을 것이다. 하지만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그녀의 배려가, 그녀의 인내가, 그녀의 희생이 당연시되면서 일상으로 굳어지는 사이 그녀 남편의 오만불손은 나무껍질처럼 두께를 더해 가기만 했으니.
말이 그렇다는 것뿐, 성품 고운 그녀가 설마 남편을 쥐 잡듯 몰아붙이기야 하겠는가. 가부장적인 남편의 ‘함부로’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녀에게 짝짝짝 박수를 보내 주었다. 크게 걱정할 일이 없다. 착하고 온순하고 마음 따뜻한-누구보다도 결이 고운 그녀다. 그날의 외출도 그녀에게는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했을 일종의 시위라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부처님께서 “법과 계율, 질서를 최우선으로 하라.”라고 하셨지만 몸으로 짓는 죄 신업身業, 뜻으로 짓는 죄 의업意業, 말로 짓는 죄 구업口業의 삼업三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가마꾼의 탄식>이라는 글을 통해 정약용 선생도 일찍이 ‘가마 타는 즐거움만 알고 가마 메는 괴로움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려의 미덕을 깨우쳐 주셨건만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사하고, 격려하는 일이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부디 그녀의 웅숭깊은 용기가 아름답게 꽃 피기를. 그래서 다만 몇 걸음이라도 존중받는 삶 속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부디 그녀 남편의 철옹성 같은 아집이 부서지기를. 그래서 다만 몇 걸음이라도 배려하는 삶 속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그들의 겨울이 잉태하고 있는 찬란한 봄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