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성성취 | 우리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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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17 조회5,50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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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서당
2005년 통리원 교무를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420번 버스를 타고 대치동 은마아파트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어렴풋이 서당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어라! 대치동 학원가에 웬 서당?’ 의아한 마음을 안고 총지사에 도착했다. 며칠 후 다시 420번 버스를 타고 대치동을 지나갈 때 서당이 있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정말 서당이 보였다. 대치동 상가 건물 2층에 하얀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우리서당’이라고 적힌 자그마한 간판이 분명하게 보였다.
그때부터 서당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치동 학원가의 서당에서는 무엇을 가르칠까? 서당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얼마 후 용기를 내어 서당에 들어가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다. 수강료는 3개월에 42만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교무 월급에 비해 큰 돈이었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첫 수업시간, 서당 선생님은 50대 초반으로 머리를 길게 묶었고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르신 이외수 작가와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철학과 학생들과 한의대 학생들이었고 수업과목은 논어였다. 서당 선생님은 논어 수업보다는 세상 사는 법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곤 하셨다. 우리서당이라는 이름도 우리 모두 함께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희망해서 우리서당이라고 지으셨다고 한다.
서당선생님은 우리서당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우리봉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2번씩 봉사활동을 하게했고 나도 자연스럽게 같이 봉사활동을 다니게 되었다. 2년 정도 함께 봉사활동을 했고 고아원, 요양병원, 목욕봉사, 청소봉사, 반찬배달 봉사 등 그때의 다양한 경험들이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언젠가 서당 선생님이 나를 불러 이런 질문을 하셨다. “작은 막대기로 작은 북을 치는 것과, 작은 막대기로 큰 북을 치는 것과, 큰 막대기로 작은 북을 치는 것과, 큰 막대기로 큰 북을 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큰소리가 나느냐?” 나는 당연한 듯 대답했다.
“큰 막대기로 큰 북을 치는 것이 소리가 제일 큽니다.”
그때 서당 선생님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앞으로 큰 막대기가 되어서 큰 북을 치는 사람이 되거라!”
이 말은 들은 지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떤 막대기로 어떤 북을 치고 있으며 그 북소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을까? 조금씩 조금씩 나를 다듬고 다듬어 이 세상을 위해 큰 북을 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부처님에게 다시 한번 다짐하고 서원해본다.
어차피 이 몸도 이 세상에서 받은 것,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도 이 세상에서 취한 것이다. 무엇을 받았든, 얼마를 받았든, 어떻게 받았든, 오직 감사할 따름이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니 나로부터 나가는 것이 베품이 될 수 없다.
더 받으려기 보다 더 가지고 있지 않은지 항상 점검해야 하고 또한 받은 것들을 잘 사용하고 잘 돌려보낼 수 있어야 한다. 필요에 따라 모아 행하고 일이 다하면 세상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어차피 세상에 남길 것은 없다. 육신의 소멸과 함께 이름에 붙여지는 명예나 칭송도 쓰러지고 만다. 이 삶, 이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최선의 행을 추구하다가 바람처럼 떠나면 그만이다.
내가 한 모든 행위는 이 우주 어딘가에 남겨지고 나에게서 나간 모든 것은 나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것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