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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 지관쌍운(止觀雙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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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14 조회6,1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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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관쌍운(止觀雙運)

 

불교에서는 어떤 형태의 선정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가 하면 이른바 지관균등(止觀均等)의 선정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적이라는 것은 지관균등의 선정에 의해서 깨달음의 지혜가 가장 잘 얻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선정에는 지()와 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지의 선정이라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선정의 종류 가운데에서 사마타(samatta)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시켜 고요하게 가지는 것입니다.

즉 마음의 움직임이 없이 한 곳에 붙들어 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관의 선정이라는 것은 위빠싸나(vipaśyanā)라고 하는 것인데, 지혜를 가지고 대상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지의 정에 의하여 고요해진 마음으로 대상을 지혜롭게 관찰하는 것이 관의 정입니다.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명상하는 것을 관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에 의해서 고요해진 마음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지는 번뇌를 차단하는 것과 같고, 관은 번뇌를 끊는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면, 지는 잡초를 움켜쥐는 것과 같고, 관은 그렇게 움켜 쥔 잡초를 낫으로 베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지와 관을 균등하게 사용하여 지혜를 자아내고 번뇌를 끊는 것을 지관쌍운(止觀雙運)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정은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상태인데, 이 상태를 지관균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지혜는 바로 이 지관균등의 상태에서 얻어질 수가 있습니다.

 

팔정도의 정정正定을 설명할 때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선정에서 지의 상태가 너무 깊어지면 마음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하여 기절상태와 같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지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또 관의 상태가 너무 깊어지면 마음이 이것저것을 살핀다고 산란해 지기 때문에 이 또한 바른 지혜를 얻기 어려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지관균등의 선정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지관균등의 이상적인 선정을 색계의 사선정에 두고 있습니다. 즉 색계(色界) 초선정에서 제이선, 제삼선, 제사선정의 네 단계의 선정을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보며 그 중에서도 특히 가장 높은 단계인 제사선(第四禪)이 가장 뛰어난 지관균등의 선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사선정을 사정려(四靜慮)라고도 하는데, 부처님께서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드라의 곁을 떠나 독자적으로 개척한 선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실 때에도 사선정 가운데의 제사선第四禪의 상태에서 아누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anuttarā samyak-saṃbodhiḥ)를 얻으시고 또 육신통을 구비하셨다고 합니다. 아누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말합니다. , 더할 나위 없이 높은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입멸하실 때에도 제사선(第四禪)에 머물러 입멸하셨다고 합니다.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드라는 선정으로서는 가장 높은 단계인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지에 치우친 선정이었기 때문에 인생의 괴로움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개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와 관의 정에서 어느 것이 더 깊은 단계의 선정인가하면 역시 지의 쪽이 더 깊은 단계의 선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의 정은 무색계의 정에 속하고 관의 정은 색계의 정에 속하기 때문에 지의 정이 더 깊은 경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정수행을 하게 되면 낮은 단계에서 점차 깊은 단계의 정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관의 정에서 지의 정으로 옮겨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욕망으로 덮여 있던 욕계의 우리의 마음이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욕망을 배제한 색계의 사선정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것이 다시 깊어지면 무색계의 정에 들 수 있습니다.

무색계의 정에는 공무변처정, 식무변처정, 무소유처정, 비상비비상처정의 네 단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멸진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정 가운데에서 가장 깊은 정에 해당됩니다. 멸진정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멸하고 마음이 완전히 정지하여 소멸해버린 상태와 같은 참된 무념무상의 경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정의 깊이에 따라 색계 사선과 무색계의 네 가지 단계, 그리고 멸진정을 포함하여 아홉 단계의 선정을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고 합니다. 아라한 가운데에서 뛰어난 자는 구차제정의 순서를 따라 차례대로 선정의 깊이를 더 해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에 반하여, 보살 이상의 경지는 어떤 경지의 정이든지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정의 단계에서 가장 깊은 단계의 멸진정이 가장 좋은 것이냐 하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역시 지관균등의 색계 사선정이 지혜를 드러내게 하는 데에 가장 좋은 것이며 그 중에서도 제사선이 가장 이상적인 선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정이 깊어져 지의 쪽이 강하게 되면 마음의 작용이 거의 멈추어 그 자체로는 나무나 돌과 다를 바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선정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생활 가운데에서 지혜에 의하여 고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지관균등, 지관쌍운에 의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할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색계사선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팔정도의 정정도 바로 이 색계사선을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선정이 정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고 또 모든 선정 가운데에서 가장 근본이 된다고 해서 이것을 근본정(根本定)이라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