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야기 |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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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1-28 16:00 조회6,92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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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겨울보다 먼저 우리를 찾는 손님들이 있다. 겨울철새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더 일찍 큰기러기, 흑두루미의 도착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리고 한 지자체의 까마귀 떼 도착 소식도 들렸다.
과거에는 농작물 피해와 배설물 등으로 연신 민원에 시달리던 곳이지만 까마귀 떼를 지자체 홍보에 적극 활용하고 나아가 지역의 상인들도 반기는 내용이었다. 누구나 알듯이 까마귀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좋지 않다. 게다가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배설물로 인해 불편함까지 주었기 때문에 해당 지자체가 문제를 일으키는 골치덩이를 지금의 생태관광자원으로 인식 전환을 시키기까지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에 대해 오늘과 같은 일방적인 편견은 크게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특이한 울음소리와 검은 색으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도 있었겠지만 오히려 반포지효(反哺之孝) 즉 ‘부모를 섬기는 효성이 지극한 새’로 알려져 유교 사회였던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긍정적 이미지가 더 컸을 것으로 여겨진다. 사실 까마귀가 어미를 섬기는 것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둥지에서 다 자란 새끼들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이듬해 태어난 동생들을 어미와 함께 돌보는 경우가 더러 있으므로 여러 마리가 새끼를 먹이는 과정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새끼들이 부모를 공양하는 것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효자 새’로 알려진 동양에서와는 달리 서양에서 까마귀는 ‘영리한 새’로 알려져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스스로 깨기 힘든 호두를 도로나 철로 위에 올려놓은 뒤 차량이 지난 후 깨진 호두를 찾아먹으며 또한 일부 논문에서는 사람을 인식하기도 한다고 한다.
자신들을 해코지한 사람이 있을 경우 그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음을 내어 서로에게 알린다는 것이다. 더 재미난 것은 해코지 당해보지 않은 까마귀도 그 사람의 인상착의를 안다는 것이 더 재밌다. 인상착의를 다른 새들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해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까마귀의 지능과 관련하여 재미나는 실험이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있었다. 시험관에 물을 담고 수면에 벌레를 띄웠을 경우 까마귀의 문제해결 능력을 본 실험이었는데 실험결과 참여한 까마귀는 ‘이솝우화’처럼 돌을 집어넣어 수위를 높여 벌레를 먹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다른 까마귀 종류 중 일부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도구를 만들거나 변형하는 등 지능과 관련한 행동들이 많이 보고되어 있고, 게다가 최근의 연구에서는 유희를 즐길 줄 아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처럼 ‘새는 머리가 나쁘다.’라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나쁜 선입견을 없애주는 주된 실험의 대상이 까마귀이다. 그만큼 지능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높다.
까마귀 속(屬)에 속하는 4종의 까마귀들은 형태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어 구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다만 몸의 크기와 부리 모양 그리고 각각의 날개의 길이 차이 등으로 구분한다. 큰부리까마귀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대략 까마귀, 떼까마귀, 갈까마귀 순이다. 큰부리까마귀와 까마귀는 국내에서 텃새로 서식하는 반면 떼까마귀와 갈가마귀는 겨울철에 우리나라는 찾는 겨울철새다. 까마귀의 경우도 겨울이면 북쪽에서 번식한 무리가 남하하여 개체수가 증가한다. 까마귀류는 대부분 잡식성이며 동물의 사체나 과일, 곡식, 곤충 등을 먹는다.
태화강 지역에 큰무리로 도래하는 까마귀는 떼까마귀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에 걸쳐 흔히 월동하는 겨울철새이다. 호남평야, 김제평야, 울산 태화강 등 농경지에 갈까마귀와 함께 떼를 지어 월동한다.
월동지에서 먹이는 주로 곡식을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 검은바람까마귀(Black Drongo)와 회색바람까마귀(Ashy Drongo)의 경우 몸은 전체적으로 검거나 회색이며 꼬리가 길고 끝이 부채모양으로 넓고 갈라져 있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까마귀와는 형태에서 거리가 있다. 또한 대체로 동남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고, 국내에는 드물게 지나는 나그네새이다.
대개의 경우 까마귀들은 번식기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이는 먹이를 찾는데 효율적일 뿐 만 아니라 천적에 대비하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한 맹금류가 나타날 경우 주변의 까마귀류는 물론 까치까지 협동하여 천적을 몰아내거나 위협을 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수리처럼 천적이라기 보다는 먹이 경쟁자를 내몰기 위해 혼성군을 이뤄 구역 밖으로 내쫓기도 한다.
떼까마귀나 갈까마귀의 경우 수백에서 수만 마리까지 큰 무리를 이루는 데 이들이 한꺼번에 비행하는 모습은 겨울 풍경의 또 다른 별미로 생태관광 자원으로써 가치가 높다. 과거에는 소규모로 전국에 걸쳐 국지적으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서식지가 줄고 개체수 마저 줄어 든 탓에 일부 대단위 농경지 주변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
필자의 경우도 어린 시절 끊어진 연을 따라 푸른 잔디밭 같은 보리밭를 내달리다 시커먼 떼까마귀 무리 속으로 연을 잃어버린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다음의 후손들은 이러한 진풍경을 다시는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아무튼 떼를 지어 찾아온 검은 손님들이 지역에 많은 보탬이 되어 이들의 서식지가 늘고 잘 보전되고, 검은 무리의 군무가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해마다 겨울이 오면 첫 눈과 더불어 까마귀 떼를 기다리는 시절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