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성성취 | 아름다움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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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3 13:50 조회5,36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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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에 대한 단상
사람들은 사람이나 사물이 자신의 마음에 들 때 그 대상에 아름답다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의 사전적 의미는 모양이나 색깔, 소리 따위가 마음에 들어 만족스럽고 좋은 느낌을 말한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못생김, 추함, 더러움 등 여러 단어들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러한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속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자신의 눈으로 있는 그대로 본다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분별해서 본다. 불교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욕계라고 한다. 욕계란 안이비설신(눈, 귀, 코, 혀, 피부)의 5가지 감각기관에 속아 다섯가지의 욕망(오욕)에 빠져 사는 세계를 말한다.
사람들은 눈이라는 곳을 통해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눈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각기관중 하나에 불과하다. 눈의 기능은 대상에 반사되어 오거나 혹은 대상이 보내는 빛을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면 우리가 보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보는 것은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의 정보를 통해서 안식이 보는 것이다. 식(아뢰야식)은 우리가 과거 전생부터 지금 현재까지의 삶의 정보들이 보관된 저장소이다. 과거 전생부터 현재까지의 안식의 정보도 아뢰야식에 저장된다.
실제로 우리가 보는 것은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부터 지금까지 보았던 대상들과 지금 보는 대상을 비교 분석해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 내고 우리는 그 새로 만들어 낸 대상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여기에 욕망이 더해져 보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분별해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를 본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보고(우리는 빛의 전달 속도만큼의 과거를 본다. 즉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지금의 별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10만 광년전의 별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는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봐왔던 것들과 비교해서 보게 되고, 지금 보고 있는 대상만을 보고 생각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과거 전생부터 봐왔던 대상들에 했던 생각들과 비교 분석하여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 새로 만들어낸 생각을 지금 보고 있는 대상을 보고한 생각이라고 착각한다.
사람은 이렇듯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속아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게 되고 그 결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갈망이 생기게 되어 그 좋아하는 대상을 쫓으며 자신의 삶을 허비하게 된다.
불교의 연기법으로 볼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다 존재의 이유가 있고 존재의 의미가 있다. 인간이 생각하는 똥이라는 더러운 대상도 구더기에게는 삶의 터전일 것이다. 우리는 들판에 핀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사실 꽃은 우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피는 것이 아니다. 꽃은 스스로 꽃 피울 뿐이다.
여실지견(如實知見)이란 ‘있는 그대로 알고,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 참 쉬워 보이지만 이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불교에서 수행이란 있는 그대로를 알고,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 이유와 의미가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나에게 있어 수행이란 결국 아름다움의 반대말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