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 계정혜 삼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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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19-11-28 14:27 조회6,76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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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의 근본 정신
계는 구족계를 비롯하여, 오계, 십계, 육법계, 팔재계 등 지키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양하게 주어졌습니다. 오계, 팔재계, 십계, 구족계를 한꺼번에 묶어서 오팔십구五八十具의 계라고 하는데 계는 모두 구족계가 바탕이 되며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삼취정계를 비롯하여 대승보살에 어울리는 여러 가지 종류의 계가 있습니다. 계율에 대한 것은 출가자와 재가자, 북방불교와 남방불교, 상좌불교와 대승불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고 또 종파에 따라 나름대로의 계율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계율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심신을 청정하고 조화롭게 유지하여 좋은 습관을 몸에 붙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악을 억제하고 바른 생활을 영위함으로써 삼학 가운데의 정定에 들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바른 생활태도와 습관을 몸에 붙임으로써 마음이 안정되고 맑게 되어 진리에 대한 관찰과 명상이 한결 쉽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깨달음의 지혜가 얻어집니다.
계를 지킨다는 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선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심신을 건전하게 함으로써 지혜를 이끌어 내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계를 지키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계를 통하여 바른 지혜를 이끌어 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사소한 계율에 얽매여 도리어 계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정계율을 지킨답시고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든가, 계율을 지키는 것을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여기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거만함이 몸에 붙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채식을 한다며 같이 다니는 사람들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계를 지키는 것을 무슨 큰일이나 하는 듯이 유별을 떨면서 그것을 보란 듯이 떠벌리고 다닙니다.
대중들과 함께 여행 중에 식당에서 국수를 사먹다가 국수를 멸치국물로 했다니까 당장 바꾸어오라고 시자에게 호령하는 스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별을 떠니까 쩔쩔매는 시자를 보면서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마치 무슨 큰 죄나 지은 듯이 움츠려 들던 일이 생각납니다.
부처님께서는 탁발하실 때에 주는 대로 받아 드셨지 이것은 먹는 것이고 이것은 못 먹는 것이네 하시면서 골라내지 않으셨습니다. 집착 없는 마음으로 보시해 주는 사람의 은혜를 생각하며 먹는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자기가 지켜야 하는 원칙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준다거나 힘들게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보살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참된 지계의 정신에는 어긋나는 것이지요.
언젠가 부처님께서 탁발한 음식을 드시고 계셨는데 마침 거기에 참새고기가 들어있었던 모양입니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잡숫고 계시니까 어떤 바라문이 출가승이 비린 것을 먹는다고 흉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그 바라문에게 비린 것은 너의 마음이지 비린 것을 먹는다고 마음이 비린 것이 아니라고 훈계를 하셨습니다. 탐진치로 가득 차고 다른 이를 경멸하며 정직하지 못한 그 마음이 비린 것이지 비린 것을 먹는다고 마음이 비린 것은 아니라고 하신 말씀이 아함경에 나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 어떤 마음으로 먹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채식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훌륭하고 육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다른 생명을 함부로 해치면서 까지 일부러 육식을 할 필요는 없지만 주어지는 음식에 대해서 탓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서 채식만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불가피한 경우에 육식이 나오게 되면 안 먹으면 됩니다. 거듭되는 말씀이지만 우리가 계를 지키는 것은 심신을 깨끗이 하여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 일차 목표입니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계를 지키는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되어서는 또 하나의 집착의 굴레에 묶이게 되는 것이므로 결코 훌륭한 수행 자세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 반역했던 데바닷다가 육식은 절대로 안 되며, 수행승은 반드시 나무 밑에 거처를 해야 하며, 공양이나 초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대중들을 선동했을 때, 부처님께서는 그런 것이 좋으면 너 혼자서 지키면 되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말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데바닷다가 계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엄격한 계율을 핑계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그로써 교단을 분열시키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계를 지키더라도 지계의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고 계를 지키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도리어 자신과 남을 괴롭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계는 어디까지나 선정이라는 정신통일을 얻기 위한 신체적, 정신적 훈련과 습성을 가리킵니다. 즉, 좋은 습관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의 상태가 건전하게 되는 것이 지계의 목적입니다. 계가 바르게 지켜지게 되면 심신이 안정되고 조화를 이루어 선정의 상태가 쉽게 얻어지고 또 완전하게 얻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定으로부터 깨달음의 지혜가 얻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열반에 이르게 되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를 지키는 것도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의 하나인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 두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