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 점이 이어져 선이 되다 (네프롤레피스–Sword f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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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18 조회5,66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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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이 이어져 선이 되다 (네프롤레피스–Sword fern)
순간이 모여 인생
인생은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브레이크라도 있으면 틈틈이 밟으며 쉬어 가기라도 할 텐데 인생이란 자동차에는 브레이크도 없습니다. 그냥 몸을 맡긴 채 지나가는 경치를 바라볼 뿐입니다.
“와, 멋있다!”
때로는 감탄하며 다시 보고 싶은 경치도 있지만, 고개를 돌려 보면 이미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추억, 또는 과거라는 이름을 단 채로 말이죠.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현재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현재라고 느끼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금세 과거로 바뀌니까요.
바로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생겨나는 이 순간의 ‘점’들이 이어져 하나의 ‘선’을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제법 길어 보이는 선도 시공을 초월한 광대한 역사 속에서 보면 실은 하나의 점에 불과할 뿐입니다. 아마도 세상을 만든 창조주의 눈에는 바람에 흩날리는 티끌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공룡보다 더 오래된 옛날 옛적 식물
고사리과 식물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 고사리로 대표되는 양치식물이 지구에 등장한 게 고생대 석탄기이고, 공룡으로 대표되는 거대 파충류가 등장한 것은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이니 고사리의 조상은 공룡보다 최소한 4천만 년은 먼저 지구에 등장한 셈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도 알 수 없는 지구의 비밀들, 화분 속 조그만 고사리는 그 비밀들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먼 옛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들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우리가 흔히 ‘네프롤레피스Nephrolepis’라고 부르는 식물은 엄밀히 따지자면 양치식물 고사리목 넉줄고사리과 줄고사리속에 포함된 식물 전부를 뜻합니다. 꽃시장에서 볼 수 있는 네프롤레피스에는 여러 품종이 있습니다. 그 중 보스톤고사리와 테디주니어, 그리고 더피 정도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다 대칭으로 자리 잡은 잎의 배열이나 방사상으로 뻗은 줄기의 모습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네프롤레피스는 줄기가 위로 뻗지 않고 옆으로 퍼지며 자랍니다. 대개 이런 모양으로 자라는 식물을 로제트형 식물이라고 부르지요.
길가에서 흔히 민들레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줄기의 아랫부분에 나 있는 편평하게 생긴 잎들이 땅바닥에 바싹 붙어서 자랍니다. 네프롤레피스를 키우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놓는 화분에만 심기보다는 공중이나 벽에 걸어 놓는 화분에 심어도 꽤 예쁩니다.
티끌이 모여 이루어 내는 이야기
꽃시장에 가면 사시사철 언제나 네프롤레피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나 아이에게 무언가 삶에 대한 조언을 해 주고 싶을 때 마음에 드는 네프롤레피스 화분을 하나 골라 보세요. 그리고 집에 데려와서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말을 걸어 보는 겁니다.
“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들은 옛날이야기 하나만 해 줄래?”
“옛날에 너희랑 같이 살았던 동물들 이야기 좀 해 줄래?”
그러고는 네프롤레피스가 말을 꺼낼 때까지 끈기를 갖고 기다립니다. 기다리다 보면 혹시 아나요? 몇 천만 년 전 원시시대의 하늘과 땅은 어떤 빛깔이었는지, 숲속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공룡들을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실타래의 실이 풀리듯 네프롤레피스의 입에서 나올지도 모릅니다. 밤새도록 이야기 보따리를 푸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입을 안 열 수도 있겠지요. 기분이 나쁠 수도 있고, 갑자기 생각이 안 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럴때는 꿩 대신 닭, 바로 우리 가족의 사진첩을 보는 겁니다.
옛날부터 지금 모습까지 찬찬히 아주 찬찬히, 어느 새 그 속에서 하나둘씩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까지도요. 비록 우리 인생은 티끌처럼 작은 점일 뿐이지만, 그래도 이 작은 점이 있기에 인류 역사가 이어지고 지구의 역사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먼 옛날 우리의 수많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 오셨듯, 우리 어른들도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새 우리 아이들도 그 삶을 닮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우리네 인생살이도 꽤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