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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 불교의 선정이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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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06 조회5,99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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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선정이란? (2)

 

불교가 지구상의 그 어떤 다른 종교나 철학보다도 우수하다고 하는 것은 선정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에서도 기도다 묵상이다 뭐다 하여 선정 비슷한 것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러한 것들은 자기들 신에 대한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을 몰입시키다가 환상을 보거나 환각상태에서 어이없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몰입의 상태에서 자기 몸을 학대하여 피를 흘리거나 집단자살을 하는 등 때로는 그 피해가 끔찍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 특히 서양 철학에서는 이러한 선정 체계가 빠져있기 때문에 깊은 사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본질적인 성질에 대해서는 통찰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반해 불교에서는 선정을 통하여 지혜를 개발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괴로움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괴로움 없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괴로움이 없어야 행복도 따라올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의식주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기본적으로 보호하는 이외에도 철학이니 문학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하나의 보조수단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괴로움을 해소하는 데에 극히 일부분 밖에는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행복은 진리에 바탕을 둔 인생 자체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그러한 깊은 통찰은 불교의 선정을 통하여서만 가능합니다. 선정에 의한 그러한 깊은 통찰이 아니고서 얻어지는 행복은 일시적이며 그것이 도리어 괴로움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는 아주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선정의 방법들이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부터 사용되었으며 이론적으로도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불교의 선정 방법을 다른 종교에서 배워가지고 가기도 하며 여러 명상 단체들도 불교의 선정방법을 모방하고 변형하여 심리치료라든가 자살 예방 등에도 활용하고 있으며 때로는 상업적으로도 이용되어 일시적으로 유행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선정 방법은 앞으로도 인류의 정신 구제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을 통일하여 집중하는 선정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정을 실천하는 것에 의해서 쉽게 깨달음의 지혜가 얻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혜의 삼학의 구조에서는 먼저 계율을 잘 지켜서 심신의 안정을 이루고 그것에 의하여 정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정의 실천에 의해서 깨달음의 지혜가 얻어지는 것이며 깨달음의 지혜에 의하여 번뇌를 끊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열반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처럼 열반은 깨달음의 지혜로부터 생기고 깨달음의 지혜는 선정으로부터 생긴다고 했는데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째서 정이 필요한가를 비유를 들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예를 들면, 등불을 들고 어둠을 비춘다고 할 때 큰 바람이 불어서는 등불이 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등불을 바람이 불지 않는 방안에 가지고 들어가면 흔들리지 않고 잘 비출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정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지혜의 등불이 제대로 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산란하고 흔들리는 상태에 있어서는 어떠한 생각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집안에 큰 걱정거리가 있으면 그것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다른 일에 열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선정으로서 마음을 고요히 해 놓지 않으면 정신집중이 될 수가 없고 바른 지혜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선정이 있어야 깨달음의 지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나오는 재치가 아니라 꾸준히 지혜의 등불이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요동 없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정이 실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원래 정이라는 것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에서 내려오던 일반적인 실천법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만났던 알라라 카라마나 웃다카 라마풋트라 같은 선인들도 선정의 대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정의 수행은 불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불교 이외의 인도의 종교나 사상에서는 깊은 선정의 경지를 열반과 동일시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어디까지나 정은 깨달음의 지혜를 얻기 위한 것에 목적을 두지 선정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이 점에서 선정에 대해서 불교가 다른 종교나 사상과 다르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정에 의해서 깨달음의 지혜를 얻고 그 지혜의 힘에 의하여 고의 원인인 번뇌를 단절하고 악의 씨앗을 남김없이 제거하여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이 아무리 깊은 경지에 도달해도 그 자체로서는 고로부터 해탈한 것도 아니고 열반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정에 들어 있을 때는 마음이 안락하여도 정에서 벗어나면 번뇌로 가득 찬 현실로 돌아와 버리기 때문에 선정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또 깊은 명상에 들어 마음이 정지하거나 없어져 버린다면 선정을 통하여 얻어야 할 지혜도 얻지 못하게 되어버릴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드라에게 선정을 배울 때 선정의 가장 깊은 단계인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에 이르셨지만 만족하지 못하시고 그들의 곁을 떠나버리신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어디까지나 깨달음의 지혜를 얻는 것을 선정의 목적으로 보며 정의 완성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거나 열반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종교나 사상과 다른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