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야기 | 토닥토닥 위로해 줄래? - 아글라오네마–Aglao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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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2 14:04 조회5,67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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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토닥 위로해 줄래?
- 아글라오네마–Aglaonema
죽이는 손, 살리는 손
이십대 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친구 커플을 만난 자리에서 친구의 여자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레옹 닮았다는 말 안 들으세요?”
그때까지 영화 〈레옹〉을 보지 못했던 저는 레옹이란 인물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다음날 대여점으로 달려가 <레옹>을 빌려 봤습니다. 그리고 저와 레옹의 닮은 점 세 가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냈습니다. 첫째, 웃을 때 바보 같다. 둘째, 눈이 크며 약간 튀어나와 있다. 셋째, 앞머리가 조금 벗겨졌다.
영화 〈레옹〉 속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아 보라면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화분을 들고 걸어가는 레옹의 모습입니다. 영화 내내 레옹이 갖고 있던 심리 상태가 이 한 장면에 압축된 것 같다고나 할까요?
한 사람의 손이건만 한쪽 손은 생명을 죽이는 데 쓰이고, 다른 한쪽 손은 생명을 보살피는 데 쓰인다는 게 엄청난 부조리에, 이율배반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또는 이해하기 싫은 그 무언가가 장면 속에 숨어 있는 듯했습니다.
생긴 것도 제각각
아글라오네마는 영화 〈레옹〉에서 줄곧 레옹의 곁을 지킨 식물입니다. 레옹이 들고 다니던 작은 화분 속 식물이 바로 아글라오네마지요. 그런데 영화가 꽤 인기를 끌었던 것에 비해 아글라오네마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영화 속 빛나는 조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는 아마도 우리나라에 이글라오네마란 식물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고, 아직까지는 식물이 우리 생활의 관심사로 자리 잡지 못한 탓도 있을 겁니다. 이에 비하면 서양에서는 이글라오네마가 꽤 인기 있는 식물입니다.
그 이유는 우선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잘 자라는 튼튼한 성질 덕분이기도 하지만, 잎의 무늬가 품종에 따라 다양해 감상하는 재미가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녹색과 은백색이 조화를 이룬 품종부터 물감을 흩뿌린 듯 크림색 점이 찍혀 있는 품종, 잎맥을 따라 붉은 기운이 도는 품종까지 아글라오네마의 품종은 대략 50여 가지 정도가 됩니다.
외로운 킬러의 안식처
아글라오네마의 다양한 품종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드보라, 마리아, 매리 앤, 시암의 여왕, 은의 여왕. 다른 식물에 비해 유난히 여성과 관련된 이름이 많이 보입니다. 왜 하필 이 식물에는 이렇게 여성의 이름이 많이 붙은 것일까요?
아글라오네마 잎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짙은 선글라스를 낀 레옹의 얼굴이 겹쳐 보입니다. 너무나도 남성스러운 레옹과 너무나도 여성스러운 아글라오네마. 두 존재의 만남이 왠지 모를 운명처럼 느껴지면서 레옹이 아글라오네마를 끝까지 놓지 않았던 진짜 이유를 알 것만 같습니다.
강해 보이지만 너무나도 약하고, 완벽해 보이지만 너무나도 빈 틈이 많은 레옹에게 아글라오네마는 잠시나마 편안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아니었을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편이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어려운 부탁도 다 들어주는 단짝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요?
레옹의 모습 속에서 소외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있고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외로움은 더욱 더 커져만 갑니다. 나라는 존재가 끝없이 넓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무인도처럼 느껴집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레옹 같다고 느껴시는 분, 아니면 언젠가는 레옹처럼 될 것 같아 걱정되는 분이 계시다면 방법은 딱 하나, 작은 화분에 담긴 아글라오네마를 준비하세요.
빛이 잘 드는 창가에 놓고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아글라오네마는 단짝 친구가 되어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줄 겁니다.
생명이 생명과 이어지며 하나가 되는 감동을 경험하게 해 줄 겁니다. 세상에서 내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단짝 친구와 마주하고 있는 풍경,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