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딤돌 | [속담으로 보는 불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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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3-02-28 14:12 조회2,69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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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모로’는 ‘비껴서, 옆쪽으로, 가장자리로, 대각선으로’ 등을 뜻하는 부사다. 옆으로 걸어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그 방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뜻이다. 걸어가든, 기어가든, 날아가든, 혹은 곧장 가든, 둘러 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
누군가를 비난할 때 이 속담을 인용하여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줄 아나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역경을 헤치고 어떤 큰일을 해낸 사람을 향해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라고 격려할 수도 있으리라. 이렇게 이 속담은 긍정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이 속담을 불교수행에 적용할 때 바로 그렇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듯이 염불이든 참선이든, 밀교든 현교든, 간화선이든 위빠싸나든 불교의 궁극적 깨달음을 얻게 해 주면 그 수행은 정법正法이다.
그런데 모로 걸어서 서울로 갈 때 목적지인 서울이 어떤 곳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나중에 서울에 도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듯이, 불교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내가 체득한 경지가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나 스스로 알 수 있으리라.
그러면 불교의 깨달음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명료하다. ‘번뇌가 사라지는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가르침은 고, 집, 멸,도의 사성제四聖諦로 요약된다. 사성제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란 뜻이다. 모든 현상은 궁극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고성제, 그런 고통의 원인은 내 마음 속의 탐욕, 분노, 우치愚癡와 같은 번뇌라는 집성제, 이들 번뇌를 모두 제거하여 고통이 사라지는 열반의 멸성제, 그리고 이렇게 번뇌를 제거하는 팔정도(또는 계정혜 삼학)의 수행인 도성제다. 사성제에 대한 통찰을 현관現觀이라고 부르는데, 사성제 현관의 궁극적 목표는 멸성제인 열반의 증득에 있다. 즉, 불교수행의 길에서 최종 목표는 번뇌가 소멸한 열반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듯이, 그 어떤 수행법을 선택했어도 나에게 열반을 증득하게 해 주면 그 수행법은 정법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열반은 ‘번뇌의 소멸’이다. 따라서 내가 열반을 얻었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방법은 탐욕,분노, 우치와 같은 번뇌가 아직 남아있는지, 아니면 완전히 사라졌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면 된다. 이성에 대한 음욕, 음식을 가리고 탐하는 식욕, 잘난 체 하며 폼 잡고 싶어 하는 명예욕, 재물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마음 등이 탐욕이다. 분노는 남에 대한 미움, 화, 질투,저주, 적개심 등으로 나타난다. 내가 어떤 수행을 했는데, 꿈에라도 이런 감정이 남아 있다면 나는 아직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또 ‘어리석음’이라고 번역되는 우치가 남아있어도 나는 깨달은 사람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치는 소나 말처럼 어리석은 게 아니다. 머리는 좋아도 ‘잘못된 종교관’을 갖는 게 우치다. 또 “내가 누구인지?”, “세상 만물이 왜 존재하는지?”, “내가 왜 태어났는지?”와 같은 철학적, 종교적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거나, 누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상대방이 이해하도록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직 우치가 사라진 게 아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듯이, 그 어떤 수행을 해도 탐, 진, 치의 번뇌를 제거해주면 그 수행은 정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수행은 사법邪法이든지, 내가 그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