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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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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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3 13:49 조회5,4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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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감사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잃은 게 있으면 얻은 것도 있기 마련, 그로 인해 깨달은 것도 적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일상의 소중함을 돌아보게 된 일이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에 갇힌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나는 불과 반 년 전쯤까지 누려왔던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절실히 깨닫게 됐다.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또 오늘 같을 그저 그런 날이 너무도 그리웠다.

자유에 대한 갈망도 절실해졌다. 코로나19 확산 공포와 함께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러온 단절감과 무력감 속에서 나는 비로소 매사 자유로웠던 지난날들에 깊이 감사했다. 걸음마를 할 때부터 마스크를 써야 하는 세상, 포옹은커녕 따뜻하게 손잡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는 세상, 마주 앉아 하하 호호 수다 삼매경에 빠질 수 없는 세상, 혹시 이 사람은 보균자가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는 세상, 언제 어디서나 바이러스 감염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세상이라니.

 

재미없다.

질병이나 재난 영화 속 상황을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내가 살아온 세상이 얼마나 복 받은 세상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전제가 있어서 그렇지, 평생 처음 맞는 긴 휴가라고 생각하니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도 그럴듯했다. 적당한 게으름을 친구 삼아 노닥노닥, 묵혀 두었던 책을 원 없이 읽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마음껏 보고, 친정 엄마의 손맛을 더듬어가며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어느 날은 베란다에 쌓아둔 잡동사니를 뒤져 반쯤 내다 버리기도 했고, 어느 날은 옷장 정리로, 또 어느 날은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외로워질 때면 그리운 이들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욕심내며, 너무도 바쁘게 살았었노라, 반성문 같은 긴 손 편지를 썼다.

 

새벽이면 바다에 나가 일출을 보기도 했다. 오랫동안 꿈꾸어 온 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닷가 소읍에 이삿짐을 풀고 나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반, 도시에 두고 온 안온한 삶에 대한 미련 반, 문득문득 밀려드는 후회와 두려움에 서성여야 했던 십수 년 전의 기억이 어제 일인 듯 생생하게 되살아나 가슴이 뭉클했다.

하지만 염려와 달리 이곳에서의 삶은 안온했다. 멈추기가 어려웠을 뿐, 잠시 걸음을 멈추자 숨차게 달리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덜 갖고, 덜 먹고, 덜 쓰고도 잘 살 수 있다는 느림과 절제의 미학, 그것은 욕심을 버려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행복이기도 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즐거움으로 내 삶은 더없이 충만해졌고, 도시에서는 사금파리에 지나지 않던 소박하고 소중한 것들이 이곳, 산과 바다를 품어 안은 자연 속에서는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응원해 주었다.

 

마음에 쉼표 하나가 필요한 날은 어디든 나가면 된다. 산과 들에는 온갖 나무와 꽃들이 때맞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고, 너른 바다는 뜨거운 태양 아래 하얀 포말로 부서지며 근심과 욕심을 씻어주었다. 멀리 백두대간을 타고 달려와 소나무 숲 사이 눈부신 하늘을 흔드는 청량한 바람에 몸을 맡기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좋다, 정말 좋다는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곤 했다.

 

어둠이 내리면 하나 둘, 그리움 같은 불을 밝히는 항구의 풍경도 정겨웠다. 그 불빛에 기대어 지친 몸과 마음을 쉴 수 있는 시간도 아름다운 유혹이었다. 그저 견뎌내는 것과 다름없었던 부초의 삶에서 벗어나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기다리지 않아도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보내지 않아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자연은 내게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급해 하지 말라고. 늦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곤 했다.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다지만 돌아보면 견뎌낼 만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움이나 고통, 분노의 격랑도 지나고 나면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준다. 그러고 나니 이제야 알겠다. 유유히 흐르는 깊은 강물의 그것처럼 큰 변화 없이 조용하게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코로나19의 격랑 속에서 이렇게 또 하나를 배운다.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가 줄을 잇는 세상인가.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전 세계 779천여 명의 안위가 발등에 떨어진 불인 지금도 실종된 아이를 찾아 수십 년 간 길 위에 선 부모들이 있고, 난치나 불치병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들이 있으며, 묻지 마 폭행· 살인사건의 희생자들, 연애·결혼·출산·집 마련·인간관계··희망을 포기한 칠포 시대 청년들, 교통사고나 각종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래도 감사할 일이 더 많다. 굳이 최고여야 할 까닭도, 꼭 최선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크게 아픈 곳 없으니 다행이고 작은 집 한 칸, 남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될 만한 살림살이, 정 많은 가족과 벗들이 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요, 매일이 감사해야 할 날들이다.

코로나19가 준 또 다른 교훈은 이런 깨달음이 순순히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하게 앓고 난 후에 건강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고, 불행의 늪에 빠진 후에야 행복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지루할 만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도 코로나19를 겪으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려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저당 잡히고,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방심하다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밀린다왕문경>에도 때가 돼서야 행하는 노력은 할 일을 다 하지 못한다. 미리 기울이는 노력이야말로 할 일을 다 한다.’라는 말씀이 있다. 화를 당한 뒤에야 그 잘못을 뉘우치거나, 한껏 게으름을 부리다가 일이 코앞에 닥쳐서야 허둥지둥하면서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는 가르침이 우리의 현실에 일침을 가한다.

 

곧 좋은 날이 올 것이다. 우리 모두가 소박한 일상에 감사하며 가진 것 없어도, 차고 넘치는 것 없이도 풍요로운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은 세상이 한시바삐 올 수 있기를. 아주 순한 마음으로, 아주 겸손하게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