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바루기 | 색(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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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8-27 12:15 조회5,00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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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色)
물질일반으로서 색(루파, rūpa)은 원래 변이 괴멸의 뜻으로, 허물어짐의 괴로움을 낳는 존재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다른 유위제법과도 공통된 특성이기 때문에 보통은 다른 색의 생기를 장애하는 존재, 즉 공간적 점유성을 지닌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색이란 곧 시간적인 변이성과 공간적인 점유성을 지닌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물질의 최소단위를 극미極微라고 한다. 유부에서는 극미를 가설적 극미와 실제적 극미라는 이중구조로 해석하고 있다. 가설적 극미는 길고 짧음 등의 자상自相도, 공간적 점유성도 갖지 않는다.
그렇지만 지각 대상의 실재를 주장하는 유부로서는 무한소급으로 쪼개질 수 있는 부피를 가진 극미를 어느 수준에서 설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찰나를 더욱 분할하여 1/2찰나라고 할 수 없듯이 또 다른 관념으로 분석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승 유식에서는 극미를 다만 관념에 의해 파악되는 가설적 극미로만 이해하였는데, 이는 유식의 도리를 깨닫게 하는 중요한 논거가 된다.
아무튼 산하대지 등의 유형적인 일체의 물질세계는 극미의 집적이다. 그런데 일체의 물질이 모두 극미의 집적이라면 어째서 각각의 물질은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인가? 그것은 극미가 견고성․습윤성․온난성․운동성을 본질로 하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종大種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대종(mahābhūta)이란 보편적 존재라는 의미로, 곧 극미가 물질의 양적 구극이라면, 대종은 물질의 질적인 구극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보는 땅이 아니다. 땅 역시 극미의 집합인 이상 4대종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같이 4대종 중 어느 것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가에 따라 그 물질의 성격이 결정되는데, 이를 사대은현四大隱現이라고 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이러한 사대에 공空․식識을 덧붙여 현상계에 존재하는 6대를 유위有爲․무상無常의 현상으로 보고 육계六界․육계취六界聚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 때문에 육계는 무상한 것으로 관觀하여 염착심染着心을 버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대승불교도 기본적으로 초기소승불교의 육계관을 유지하면서 보다 더 철저하게 육계의 무자성을 논하고 있다. 이는 반야사상에 의한 것으로 유위법의 무자성한 공성空性속에서 무위의 법성을 보려는 것으로, 진공모유眞空妙有의 경지를 깨닫기 위한 것이다.
이는 대승불교에서 무상한 유위법에 대한 관찰의 자세가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육계를 한편으로는 무상한 유위법의 요소로서, 공상空相의 가법假法으로서 인식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식의 승혜를 성취하는 관행의 소연所緣과 반야의 성격을 상징하는 속성으로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승의 육계에 대한 인식이 나중에 밀교의 육대六大사상이 일어나게 되는 선구적 근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