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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 선정의 종류와 단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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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3 14:00 조회6,90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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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의 종류와 단계 4

 

섹계사선의 윗 단계에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의 사무색정四無色定이 있고 또 그 위에 멸진정滅盡定이라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색계의 4단계 선정과 무색계의 4단계 선정, 그리고 멸진정을 합하여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고 말합니다. 무색계 4선과 멸진정 등은 이론상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지와 관이 균형을 이루는 색계 제4선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상태의 선정입니다. 그렇지만 무색계의 선정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우선 알고 넘어갑시다.

 

먼저 공무변처정에 대해서 경전에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루 색과 상을 초월하고 유대상(有對想 : 대립하여 방해하는 것이 있다고 상상하는 것)을 멸하여 없애며, 여러 가지 상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허공은 무변하다고 하는 공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공무변처정에서 색과 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색, 즉 육체와 물질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색계정에서는 감각적인 욕구로서의 욕은 없지만, 육체나 물질 등에 대한 의식과 생각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색계에 있어서는 이러한 육체나 물질에 대한 생각과 의식을 완전히 초월하게 됩니다.

 

사무색계정의 최초에 해당하는 공무변처정은 허공, 즉 공간은 무한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것을 대상으로 삼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이때에 없어지는 것이 유대상과 여러 가지의 상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상이라는 것은 오관의 대상으로서의 색····촉 등의 오경에 대한 상념입니다. 여러 가지 상이라는 것은 욕계심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선악 등에 대한 생각입니다. , 무색계의 정에 들어가게 되면 물질만이 아니고 물질에 대한 생각과 그 이외의 선악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조차도 생기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무색계정의 첫째 경지인 공무변처정입니다.

 

다음으로 식무변처정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하고 있습니다.

 

두루 공무변처를 초월하여 식은 무변하다고 하는 식무변처를 구족하여 머문다.

 

식무변처정은 제일단계의 공무변처정에서 공은 무변하다는 외적 허공에 대한 생각을 초월하여 허공을 생각하고 있는 식 그 자체도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음을 무념무상의 상태로 가져가려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무소유처정에 대해서는 두루 식무변처를 초월하여 어떠한 것도 없다고 하는 무소유처를 구족하여 머문다고 하고 있습니다. 식무변처정의 식이 무변하다는 생각조차도 초월하여 어떠한 것도 없다, 공이다라고 생각하여 어떠한 것에도 마음을 향하게 하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이 무소유처정입니다.

 

무색계정의 마지막 단계인 비상비비상처에 대해서는 두루 무소유처정을 초월하여 무소유라고 하는 생각도 없앤 비상비비상처를 구족하여 머문다고 하고 있습니다. 무소유처정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조차도 버리고 최종적으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되는 것이 이 비상비비상처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죽은 자와 같이 완전히 정신작용이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고, 생각이 있는 것과도 같고 없는 것과도 같아서 극히 미세한 상념의 상태에 있는 선정입니다. 이것이 무색계 최고의 경지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알라라 카라마와 웃다카 라마풋드라에게서 무색계정의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를 배우고 금방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셨지만 그런 식으로 마음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것은 지혜의 개발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의 곁을 떠나셨습니다. 선정에 들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상태에 머물 수 있지만 선정에서 깨어나면 곧 생로병사의 괴로움과 직면해야 했기 때문에 그러한 선정은 인간의 괴로움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셨던 것입니다. 선정의 목적이 의식을 멈추고 나무나 돌과 같은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인간의 선정은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명상을 하면서 목석과 같이 되는 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만 지혜의 개발을 전제로 하지 않는 이러한 선정은 마취제를 맞는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선정은 선정에 들어 있을 동안에는 한없는 안락감을 누리지만 정의 상태를 벗어나면 괴로움이 가득 찬 현실로 되돌아 오게 됩니다. 이런 식의 선정을 즐기는 사람 중에는 지혜의 개발은커녕 오히려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도 그러한 까닭입니다. 때로는 이런 사람들이 불교의 간판을 내걸고 기괴한 행동으로 불교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혜의 개발을 전제하지 않는 자아도취적인 선정은 문제가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색계사선의 근본정과 무색계정의 네 가지 선정을 팔등지八等至라고도 하고 사선팔정四禪八定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멸진정滅盡定이라는 것이있습니다. 팔정에다가 멸진정을 더하여 구차제정九次第定이라고 합니다.

 

멸진정은 자세하게는 멸수상정滅受想定이라고 하는데, 아나함이나 아라한과 같은 뛰어난 성자만이 이를 수 있는 경지라고 합니다. 다른 팔정은 외도들이나 범부들도 노력에 의하여 이를 수 있지만, 멸진정은 불교의 성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기 때문에 불교 특유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멸진정은 수나 상등의 일체의 심작용을 멸한 무념무상에 의하여 심신의 안락에 머무르기 위하여 들어가는 정이라고 합니다. 멸진정은 일체의 심작용을 멸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움직임이 없어 죽은 상태와 같이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하실 때에 비구들이여, 제행무상이니 게으르지 말고 노력하라.”라고 하시는 말씀을 남기시고 색계초선에서 시작하여 무색계의 사선을 거쳐 마지막에 멸진정에 머무르시자 아난다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천안제일 아나룻다는 부처님께서는 아직 입멸하신 것이 아니고 멸진정에 들어가셨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다시 멸진정에서 나오셔서 비상비비상처를 거쳐 색계초선까지 이르셨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가 지와 관이 균등하다는 색계 제사선에서 마침내 열반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멸진정은 심작용이 멈추어 어떠한 동요도 없지만 미세한 생명활동은 남아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멸진정은 선정의 힘에 의하여 심신의 활동을 멈춘 채로 언제까지나 살아있을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하여 시설된 것으로 외도들의 무상정無想定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따라서 멸진정은 단지 법상法相의 차원에서 시설된 것으로 비상비비상처정의 연장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