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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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성성취 |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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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07-23 13:59 조회5,47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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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불교에서 이 넓은 우주를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삼천대천세계란 우리가 사는 세계(태양계, 육욕천, 범천을 포함)를 한 세계라 하고, 한 세계가 일천 개가 모이면 소천이 되고, 소천이 일천 개 모이면 중천이 되고, 중천이 일천 개가 모이면 대천이 되며, 대천이 삼천 개가 모이면 삼천대천세계가 된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로 우주엔 별과 행성들이 가득할 것 같지만 사실 우주의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다. 우리가 우주 어딘가로 내팽개쳐졌을 때, 어떤 별 근처에 떨어질 확률은 0에 가깝다. 확률이라고 부를 수 없는 0이나 마찬가지인 그 숫자가 우리가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난 사건의 확률이다.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우리 은하계의 변두리에 있는 태양계의 작은 행성인 지구, 그리고 지구에서도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에 태어났을까? 무슨 인연으로 부모님을 만나게 되고, 내 남편, 내 아내를 만나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하고 경이롭다. 과연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중생들 중에서 부자의 연으로, 부부의 연으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사무치게 와닿는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의 일이다. 4학년 2학기라 교양과목 2강의만 수강하면 되었다. 같은 과 동기가 대학 졸업 마지막 수업을 예술대에서 들어 보고 싶다고 하여 동기와 학과 후배 다섯이서 예술대에서 교양과목 수업을 듣게 되었다. 학점을 잘 준다는 과목을 수소문하여 듣게 된 과목이 불교학개론이었다. 예술대에서 불교학개론 수업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불교학개론 수업 첫날 강의실에는 2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모여 있었다. 교실문이 열리고 강의실로 들어온 교수님은 당시 통도사 사무국장 스님이었던 효범스님이었다. 교단 앞에 선 효범 스님은 강의실 중간쯤 앉아 있던 나를 계속 쳐다보시더니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하셨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가니 이번 학기는 네가 반장이다.”라며 출석부를 내게 주셨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반장을 하며 출석체크,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 출제까지 하게 되었다. 학기 마지막 수업 날 효범스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명함을 주시며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라. 너와 나는 인연이 있어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다.”라고 하셨다. 그 당시에는 별 뜻 없이 받아들였었다.

 

대학 졸업 후 총지종에서 교무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서 주관하는 국제포교사 대회에 총지종의 실무자로 참여하게 되어 23일의 일정으로 경주 불국사, 석굴암, 경주 남산,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행사를 진행하였고, 마지막 날 통도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통도사의 일정은 부처님 진신사리탑 참배를 끝으로 마무리하고 마지막 방문지인 통도사 말사인 서운암으로 향하였다.

 

서운암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는데 버스 앞에 마중 나오신 분이 효범스님이셨다. 나도 놀라고 효범스님도 나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내가 다시 만날 거라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신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던 중 효범스님께서 내 밑으로 안 오고 총지종으로 들어갔냐고 물으셔서 어머니께서 총지종의 오랜 교도라고 말씀드렸다. 효범스님은 언제든지 오고 싶으면 내게 오라고 말씀하시며 주변의 스님들에게 내 제자라고 나를 소개시켜 주셨다. 서운암 주지스님이신 효범스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졌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른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전생에 내 부모였을 수도, 부부였을 수도, 스승이었을 수도, 도반이었을 수도 있다. 삼천대천세계의 이 넓은 우주에서 지금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중한 인연이었을 거란 걸 짐작할 수 있다.

 

나의 존재가, 너의 존재가 미약하게 느껴질 때면 밤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들어 보기를.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은 눈으로 보기엔 무척 가까워 보인다. 지구에서도 가까워 보이고 별들끼리도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그 거리는 빛의 속도로도 수십 년씩 걸리는 게 보통이다. 나의 존재, 너의 존재는 그 아득한 거리를 거스르고 0이나 마찬가지인 확률로 선택받은 고귀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인연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