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바루기 | 관정 灌頂 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0-11-04 14:42 조회4,574회관련링크
본문
관정 灌頂 ①
관정灌頂은 아시아 종교 세계를 관통하는 의례의 큰 기둥이다. ‘관정灌頂’의 ‘관灌’은 ‘물을 붓다’의 뜻이고, ‘정頂’은 ‘정수리頭頂’를 가리킨다.
‘성聖과 속俗’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속된 것’을 ‘성스러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 관정이거나, 입문의례로서 통과의례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관정은 ‘특정인에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의례’라고 할 수 있으며, 물을 붓는 것은 그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동작이라 할 수 있다.
관정의례의 기원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기원전 천년紀 베다문헌에 나타나는 고대 인도의 국왕 즉위의례이다. 거기에는 왕에게 부어지는 것은 단순한 물이 아니라 천계天界의 물이며 동시에 빛나는 것으로도 여겨진다. 신적神的인 에너지가 깃든 물질이고 그것을 쏟음으로써 새 왕은 보통사람이 아닌 특별한 힘을 갖춘 초월적 존재로 바뀌는 것이다.
불전에는 석존 자신이 황태자를 정하는 의례로서 관정을 실시한 것 이외에도 석존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석존을 임신했을 때 4대해의 물로 관정을 받았다는 것을 전하는 문헌이 있다 『중허마하제경
衆許摩訶帝經』.
또는 석존이 태어나자마자 두 마리의 용이 석존에게 관수를 실시한 「용왕관수龍王灌水」도 관정에 해당하는 행위로 간주되기도 한다. 석존의 전생 이야기를 집성한 자타카에는, 왕이나 왕자로 활약한 전생의 석존은 그때마다 관정을 받으며 왕이나 황태자로 즉위하고 있다.
대승불교 보살들은 결코 왕이나 황태자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불교라는 세계의 중요한 후계자들이었고, 이들은 말하자면 불법이 지배하는 나라의 왕자들이었다. 보살의 수행단계로 잘 알려진 보살십지에서는 마지막 단계를 ‘관정주灌頂住’로 불리기도 하고
‘법왕자주法王子住’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 명칭보다 ‘법운지法雲地’가 경전에서는 더 일반적인데, 이 역시 불교의 가르침인 법이 구름에 비유되어 그로부터 오는 비가 바로 부처의 지혜이며, 그 혜택을 받음으로써 보살이 수행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 이미지는 관정과 다를 바 없다.
싯다르타 왕자 탄생 후의 선인들의 예언이나 붓다의 설법을 전법륜이라 칭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상세계의 이상적인 왕인 전륜왕과 정신세계의 왕인 붓다는 예로부터 불교사상에서 대비되는 존재였다. 붓다의 자리[부처]를 얻음[성불]을 보증하는 수기와 왕위계승 의식 혹은 왕위를 결정하는 의식인 관정이 결합된 것도 인도 불교의 맥락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